내 블로그의 존재 조차 잊고 있을 무렵 갑자기 글을 올리고 싶어 졌다.
우리 둘만 있을 땐 어떤 시간을 쪼개서라도 캠핑 가고 쇼핑하고 드라이브하며
남편의 사진에 나의 글을 더해 블로그 관리를 했었는데 딸들이 하나 둘 귀국하며 함께 할 식구가 늘다 보니 그게 영 안 되었다.
식구 수에 따라 짐도 늘어간다.
방에 빈 공간이 있기를 원하는 딸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책장을 버리던 어느 날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솎아내고자 책을 분류해 중고상에 팔 수 있는 것은 팔고 버릴 것은 버리고 남 줄 것은 주고.
산더미 같은 사진도 구경 겸 정리를 위해 뒤적뒤적...
그러다가
나의 유학 시절
졸업시험이 될 마지막 연주를 하던 날의 사진을 발견했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내 큰딸 역시 나처럼 졸업을 위한 리사이틀을 했고 좋은 점수로 시험을 통과했다.
내가 유학한 기간은 만 7년, 내 딸의 유학기간은 만 9년.
게다가 난 결혼해 남편과 함께 갔지만 내 딸은 혼자 달랑 뭣도 모를 열아홉에.
그러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말 안 해도 충분히 안다.
참 고생 많았다.
둘째 역시 중2 때 미국으로 가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했으니 이 녀석 역시 고생스러웠을 것이다ㅜㅜ
난 내 딸들이 외국에서 계속 살아도 좋고 외국인과 결혼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데
우리 두 딸은 절대 싫단다.
한국에서 살 거고 결혼은 안 한다니
내 꿈이 사위 일찍 보는 거였는데 아무래도 내 꿈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듯하다.
외국에서 돌아온 후
내 딸들은 서울 외가를 비롯 친척들이 사는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소일했다.
이모네 보러 청주로
할머니 뵈러 광주로...
반가워서 시끌시끌
아쉬워서 왁자지껄
소중한 시간들을 하나씩 엮었다.
식탁에 놓이던 두 벌의 수저가 차가운 대리석과 겹치면서 늘 썰렁함을 자아내곤 했었는데
이젠 네 세트다.
그 숫자만으로도 이미 온기가 돈다.
가족이 모두 모이면 얼마나 행복할까 늘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모여보니 그렇지만은 않았으니.
이견으로 인한 다툼이 잦았다.
왜 그럴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아주 많이 보낸 끝에 어느 날 이유를 찾았다.
아이들이 외국으로 떠날 때의 나이가 둘째 딸은 사춘기, 큰딸 역시 십 대.
그러나 돌아온 건 어른이 된 이십 대다.
내 머릿속 두 딸은 아직 어린 아이라 내 잔소리와 간섭은 하늘을 찌르고 어른의 반열에 오른 딸들은 반감이 든 것이다.
정말 힘들었다.
딸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유를 알게 된 지금 나는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기, 내 맘에 안 들어도 절대 간섭 안 하기 등등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믿고 기다려 주자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귀국 후 그 짧은 기간에 큰딸은 연주를 참 많이도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둘째 딸 역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동아리 활동도 하며
나름 대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도 안 시켰는데 왠지 딸들이 내 품을 떠난 것처럼 허전하다.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야, 우리끼리 재미있게 잘 살자~~"
남편은 남편의 자리에서
나는 내 자리에서.
그렇게 각자의 모습으로
내 소중한 가족.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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