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의 다양성으로 인해 크고 작게 늘 바쁜 나는
둘째 딸이 미국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그나마 독일에서 공부 중인 큰딸에게 지난 언제의 설인가 그때 한 일주일 정도의 기간으로 잠시 방문을 하였을 뿐.
그런데 시간이 흘러 벌써 꽉 찬 9년이 되었단다.
무슨 말이냐 하면.
수능시험을 마치자마자 바이올린 매고 독일로 유학 떠났던 큰딸이 유학생 신분으로 독일에서 산 세월이 벌써 9년 째,
그러니까 우리 딸이 열아홉에 유학 가 스물여덟이 된 지금 비로소 대학원 과정까지 다 마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간 하노버, 쾰른을 거쳐 뉘른베르크까지.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들어서 또는 다른 지역에서의 유학생활도 괜찮겠다 싶어 과감히.
그러느라 세 곳에서 공부를 한 것.
졸업시험은 총 두 번으로
1차 시험은 몇 달 전 아주 좋은 성적으로 이미 통과했고 남은 2차 시험만 통과하면 끝이다.
공부는 이제 그만 하고 지금부터는 돈이란 걸 좀 벌고 싶다며 사회활동에 대한 포부를 돌려 표현하던 딸.
연주자, 지도자로서의 삶이 목전에 있다.
딸이 말한다.
이 시험 끝나면 시간도 많겠다 가족 모두 여행 삼아 왔으면 좋겠다고.
한여름이라 8월 중순까지는 연주 스케줄도 없고 레슨들만 한 열흘 미루면 되니 못할 것도 없다.
강행.
그렇게 해 떠난 여행길이다.
큰딸만 큰 줄 알았는데 작은딸 역시 다 컸다.
한국을 떠남과 동시에 행여 길 잃을까 염려하는 엄마처럼 우리가 어린아이도 아니건만 굳이 보호자 역할을 자처한다.
우리도 독일어 할 줄 안다고 해도 절대 안 믿고 말이다.ㅎㅎㅎ
전주에서 리무진 버스로 3시간 반, 비행기로 12시간가량을 가야 한다.
흑흑
비행기 싫어하는 나에게 얼마나 힘든 여정이던지.ㅠㅠ
마지막 비행기다.
드디어 다 왔다.
도착하니 그곳 시간으로 밤 11시 무렵.
무조건 자고.
상쾌한 아침을 맞는다.
창문을 연다.
5층 규모의 집들이 무질서한 듯 질서 있게 모인 조용한 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아침상을 꼭 자신의 손으로 차려주고 싶다는 딸이 부산 떨며 부스럭 부스럭.
뭔가 열심이다.
고맙기도 해라~~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혼자 사는 손바닥 만한 자취집에 테이블은 있으나 의자가 두 개라 넷이 앉을 수 없다는 것.
궁여지책으로 방바닥에 세팅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빵과 슁켄 그리고 치즈로 근사한 아침상이 차려졌다.^^
지금은 일단 이렇게 먹고 다음엔 침대 곁에 테이블을 끌어다 놓고 침대에 걸터앉아 식사하는 걸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으니 내가 좋아하는 쇼핑도 할 겸 시내 구경에 나선다.
트람을 타고 한 정거장 가서 지하철로 갈아탈 예정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슈트라센반(Strassenbahn)이라고 불리는 시내 노면전차를 독일에서는 트람(Tram)이라고 부른다.
자율 승차라 알아서 자신의 상황에 맞는 티켓을 구매하면 되는데.
이게'자율'이라는 말에 엄청난 유혹이 있어서 말이지...
부끄럽지만 유학시절 우리의 일화다.
우리나라에 비해 차비가 비싼 터라 아깝다고 생각하던 차에 차 안에 검사원도 없겠다 겁 없이 무임승차를 종.종. 하곤 했는데
어느 날 걸렸지 뭔가.
검표원과 함께 내려 벌금딱지를 받는데 어찌나 창피하고 민망하던지...
그 후 다시는 그러지 않았다는 거.
역시 경험은 다 유익한 거야 ^^;;
'딸아 너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 했더니
찌릿
'당근 안 해'
지난 방문 때 사 간 신발을 너무 편하게 잘 신고 있어서 또 사러 갔다.
다음 날도 쇼핑.
이번엔 옷, 가방
작은 슈퍼에서도 쇼핑 ㅋㅋㅋㅋㅋ
사실 내가 쇼핑을 좀 좋아하긴 하지만 유독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간 날씨 좋던 독일이 내가 간 후부터 며칠 째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15도까지 내려가 심지어 춥기까지 했다.
그러니 어딜 가겠는가 실내 쇼핑이나 해야지ㅎ
며칠을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즈음.
비가 내리다 말다, 가랑비가 내렸다 장대 같은 소나기가 내렸다 하던 매우 독일스럽던 어느 날.
답답한 집 벗어나 뮌헨에 있는 BMW 박물관이라도 다녀오자 싶어
커다란 핸드백에 우산 챙기고 간식까지 넣어 만반의 준비를 갖춰 길을 떠났다.
뮌헨 도착.
BMW의 로고 모양을 살린 본사 건물 옆으로
자동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있는데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건물 축소판이 떡!
정말 정교하다.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 여자들은 그저 예쁘고 신기한 느낌밖에 없었으나
우리 남편은 조금 다른 듯.
말수가 많아지고 표정도 약간 흥분 상태다. ㅋㅋㅋ
그런데 내 남편처럼 평소보다 조금 더한 관심으로 차를 배경 삼아 사진 찍는 정도는 매우 일반적.
차 내외부를 이 잡듯 샅샅이 살펴보는 이, 자동차를 모델 삼아 그림으로 섬세하게 그려내는 이 등등
자동차에 너~~무 심취한 사람이 많아
자동차 구경 못지않게 그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박물관 건물의 길 건너에 있는 또 하나의 BMW 빌딩 광장에는
관객에 대한 서비스로 체험용 모터사이클을 전시해 두고 사진 촬영을 허락한 곳이 있는데
한사코 싫다는 사람을 꼬드겨 모터사이클에 올라타게 했더니 남편이 실제 타는 듯 한껏 기분을 낸다.
이 모습을 본 딸들,
아빠가 진심으로 좋아한다며 엄청 놀려 까르르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자, 이제 밥을 먹으러~
여행객에게 양 많고 맛있는 돈가스로 입소문 난 한 식당을 찾아간다.
우리 땐 지도 한 장 들고 물어 물어 찾아다녔는데 요새 아이들은 다르다.
갈 길, 탈 차, 맛집 등등
모든 정보가 부처님 손바닥이 아닌 손바닥 안 아이폰에 다 있다 ^^
그릇 만한 돈가스가 빵도 채소도 반찬도 없이 커다란 접시에 하나 가득 나오는데 그야말로 오로지 튀긴 음식 천지.
밥순이인 나는 먹다 먹다 목이 메어 속으로 김치만 부르짖다가 결국...
남.겼.다.
우리 딸이 열심히 안내한 곳이라 말도 못 하고 말이다. ㅠㅠ
밥을 먹었으니 뮌헨의 시내도 구경해야지.
내가 좋아하는 WMF.
비싸서 그렇지 역시 좋군.
거리 예술가가 흙으로 엎드린 개를 만들어 냈다.
"가자" 하면 벌떡 일어나 따라나설 것만 같은 생동감에 보는 이들이 후한 박수세례를 퍼붓는다.
독일의 에스컬레이터는 우리나라의 것보다 속도가 무지 빠르다.
쌩쌩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에스컬레이터를 보며 내가 놀랐더니 우리 딸들이 하는 말.
"프라하는 더 빨라. 목숨 내놓고 타야 할 만큼"
ㅋㅋㅋㅋㅋㅋ
뮌헨을 돌아보는 사이에도 비는 계속 오락가락했었다.
우산을 폈다 접었다의 반복.
그게 귀찮아서일까 유럽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잘 안 쓴다.
그저 옷에 달린 모자를 푹 뒤집어쓰던가 아님 어린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맞고 가니
그 덕에 그 유명한 프라다의 생활방수 원단이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남편은 딸바보다.~
그저 딸 사진 찍느라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질 줄을 모른다.
우린 네 식구가 한자리에 모일 일이 별로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모이면 늘 웃는다.
분명 힘들 텐데 분명 화가 좀 난 듯한데 분명 피곤해 보이는데... 그럼에도 웃는다.
그래서 어떤 땐 짠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우리 셋을 데리고 다니느라 힘들 법도 한데 큰딸이 늘 웃었다.
기특하고 고마운 딸.
이제 어디로 갈까?
여행지로 유명하다는 밤베르크로.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좋다.
좋은 정도를 넘어 오히려 더울까 봐 걱정할 정도다.
더위에 대비해 얇고 하늘거리는 옷차림으로~
뉘른베르크에서 기차로 한 30분 갔나?
밤베르크는 작고 아기자기한, 중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주 예쁜 소도시였다.
오른쪽 건물 뒤편으로 가면 아름다운 장미정원이 있다고 하니
가 보자.
어머나~~~~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오스트리아 비인의 쇤브른이나 미라벨 정원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견주어 손색이 없을 만큼 잘 가꾸어진 아주 예쁜 정원으로, 꽤 높은 곳에 위치한 탓에
정원 가장자리 담장 곁의
빨간 뾰족 지붕이 만들어 낸 장관과 이웃한다.
'작은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밤베르크.
그럴 만한 게.
집과 집 사이를 흐르는 운하와, 그 좁은 운하를 운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쭉한 배 '곤돌라'가
이태리 베네치아의 광경과 매우 흡사하다.
기념사진 1
두 번째 기념사진은 나의 먹방.. 아니 먹사로~
왔으니 기념사진만 남길 게 아니라 뭐 하나 사 볼까~
이건 어때?
이건?
에이 이건 아니다~~~
쇼핑하고 주변을 여행하는 사이 어느덧 주어진 열흘의 시간이 다 지났다.
이제 귀국 준비.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우리는 토끼 잘 있나 모르겠다며 '보고 싶다'를 연발했다.
사실 오기 전 가장 큰 걱정은 토끼였다.
우리가 있을 때에도
더위에 지친 자신의 몸을 내동댕이치듯 눕혀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한국 무더위에 열흘이나 집 비울 생각을 하니 토끼가 여간 걱정이 아니었던 것.
먼 곳에 사는 친지 중 누군가의 집에 데려다줘야 하나 어쩌나 고민을 하다가
근처에 사는 내 학생 중 한 명에게
물이라도 주러 한 번씩 들러 토끼 좀 살펴달라 미안함 가득 담아 맡겼는데
보고 싶은 마음까지는 맡겨지질 않았나 보다.
그 불안하던 마음이 이제 곧 있을 귀국으로 해소된다.
딸만 두고 가야 해서 마음이 안 좋은 반면 집에 혼자 있을 토끼를 생각하면 또 한편으로는 어서 가자 싶으니
내가 딸의 엄마인지 토끼의 엄마인지 모를 지경.ㅋㅋㅋㅋ
두 번째 독일 방문이었다.
겨울과 여름 두 계절을 다 본 내 입장에서 보자면
역시 독일은 겨울보다는 여름에 방문해야 한다.
습하지 않은 쾌적한 더위? 와 유럽 특유의 멋진 정경이 햇살과 어우러지던 여름 독일.
그러나 그 못지않게 날 사로잡는 게 또 있었으니
그건 값싸고 맛있고 안전한 채소와 과일이다.
작지만 단단하고 아삭한 식감의 사과와 달달한 저 납작 복숭아,
체리, 포도, 감자, 오이...
부럽게시리 독일에는, 내 나라에 없는 <먹거리에 대한 평온>이 존재했다.
에필로그.
놀 줄도 몰라 노는 날이면 그저 밥 먹으러 나가는 게 전부인 우리.
어찌어찌 쉰다 해 봐야 캠핑카 갖고 가 전주 주변 언저리에서 없는 듯 조용히 놀다 오는 게 다였던 우리.
큰 맘먹고 열흘이나 쉬게 되었음에도 겨우 삼일 지나자 악기 하고 싶다며 징징대는 우리.
그런 방안 퉁수 같은 우리가 두 딸 손에 이끌려 억지로라도 외국여행도 다니고...
딸 둘 낳길 참 잘했지 뭔가^^
둘째 딸 왈
다음 가족여행지는 미국이란다.
"좋지~~"
억지로라도 딸 말 들어야지 하는 생각에 선뜻 대답을 한다.
조만간 또 12시간 비행기 타겠군. ㅠㅠ
에고 팔 다리 어깨 목 허리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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