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던 하루.
점심 무렵 남편이 지나는 말을 한다.
"오늘 내 생일인데 축하한다는 말도 안 하네"
헐...
그러니까 오늘이 내가 수첩에 적어두고 꼭 축하해주리라 마음먹고 또 먹었던 그날?
진짜 이걸 어째?ㅜㅜ
순간적으로 미안함이 쓰나미가 되어 스친다.
"미안해, 여보야. 쭉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만 깜박 잊었네ㅜㅜ 축하해~~~^^"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 후 또 몇 시간,
각자의 할 일을 하다가 하루의 마지막 스케줄을 위해 연습실에서 남편을 다시 만났다.
남편과 그 대화를 마친 후 사실 나는 내 제자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었다.
이러저러하니 오케스트라 연습 올 때 내 대신 케잌 좀 사다 달라고.
내가 손수 사서 함께 축하하면 좋겠지만 그럴 만한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부탁을 한 것이다.
연습을 위해 하나 둘 단원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케잌을 사들고 온 제자가 남편 몰래 들어와야 하니 내가 남편을 막고 서서 일부러 대화를 시도하며 시선을 나에게 돌리게 했고
우리는 그 케잌을 주인공으로부터 안전하게 숨길 수 있었다.
드디어 연습 시작.
그리고 거사를 시작할 쉬는시간이 돌아왔다.
바깥 쉼터로 나간 내가 그곳에서 남편과 이야기하며 시간을 끌었고 그 사이 안에서는 주인을 기다리는 케잌에 불이 켜진다.
드디어 입장.
깜짝놀란 남편.
자, 일단 노래가 시작되고.
후~~~
남편이 불을 껐다.
정말 큰일 큰일날 뻔 하지 않았나.
일어나자 마자 축하한다고 뽀뽀라도 해 줬어야 하는데 얼마나 서운했을까.
게다가 딸들도 없고 달랑 우리 둘인데...
여하튼.
제자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촛불은 껐으니 되었다.
미안함이 조금은 가신다.
그런데 그 여세를 몰아 한 단원이 분위기를 잡는다.
"악기 쌀까요?"
연습 그만 하고 나가 놀자는 말이다.
내가 합류한다.
"내가 쏠 테니 맥주 마시러 가자~"
우리집 근처에 맛집으로도 유명한 작은 맥주집이 있는데 그집의 쫄깃바삭한 생 오징어튀김을 우리 단원들에게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한 번쯤의 일탈도 좋고^^
과연 남편이 허락할까?
남편은 무지 성실하고 원칙적인 사람이다.
연주도 얼마 안 남았는데 연습하다 말고 파티라니...할까 봐 잠시 조마조마한데
...허락이 떨어진다.
그런데 조그마한 문제가.
그집을 아는 단원 왈. 가게의 크기가 작아서 우리 단원들이 다 들어갈 수 었을 거란다.
날씨가 추워 밖에서 먹을 수도 없고...
오케이.
그럼 우리집으로 가자.
단원들이 더 좋아한다.
올 사람들에게 주소 알려주고 이따 보자 하니 모두 우르르.
빠르다^^
나와 함께 도착한 단원들에게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라 하고 내가 먼저 쓩.
우리집이 늘 잘 정리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ㅎㅎㅎ
일 년 내내 꺼낼 일 없던 교자상을 세 개나 펴고 거기에 배달 된 맥주집의 오징어튀김과 닭튀김 그리고 맥주가 셋팅된다.
2차 파티가 준비되는 중이다.
혹시 저녁밥 안 먹고 왔을 사람들을 위해 밥과 김치까지.
내가 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줄줄이 꺼내 놓으니 금방 풍요로운 상차림이 완성된다.
자, 건배.
축하축하...
왁자지껄 하하호호...
낯선 목소리에 놀란 토끼가 긴장되는지 동그란 눈으로 저금통 자세를 취한다.
쟤들은 또 뭐 하나 하는 눈치다.
우리 단원들의 대다수는 거의 남편과 나의 제자다.
그래서일까 분위기가 타 단체보다 월등히 부드러운데
모이면 거의 연습만 하다 헤어지곤 하다가 오늘 느닷없이 번개모임을 하니 단원들도 재미있는지 표정이 너무나 밝다.
설령 레슨을 받는다 해도 바깥에 있는 개인 사무실에서 받는 제자들로서는 선생님 집에 들어가 볼 기회가 없을 터.
집에 들어오자 마자 신기한지 핸드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댔었다.
-이 글에 사용한 사진들도 다 제자에게 전송받은 것들이다.-
내 레슨실을 보았을 땐 거의 환호수준.
24시간 연습 가능한 이 방음실 하나가 천만 원이 넘는다 말하니 더 깜짝 놀란다.
-시끄러운 소리, 듣기싫은 소리, 잘 안 되는 이상한 소리를 하루종일 내야 하는 우리 연주자로서는
연습실이 늘 고민거리다.
방음 안 된 내 집 내 방에서 하자니 이웃에게 피해.
그나마 학생은 학교 연습실이라도 쓰지 일반인에게 연습실은 분명 큰 고민거리임에는 틀림없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화기애애한 파티를 마친 단원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전주, 익산, 군산, 대전, 광주, 남원...갈 길도 참 다양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운전 조심하라 당부하며 단원들을 배웅했다.
치우고 가겠노라는 단원들에게 아무것도 손 대지 말고 그냥 가라 했었다.
나야 이미 우리 집에 와 있으니 천천히 뒷처리 하면 되지만 가야 할 사람들의 안전이 더 염려되어서다.
그런데도 여러명이 일어나 후다닥 정돈이나마 해 주었다.
착한 아이들^^
설거지가 끝났다.
식사한 게 아닌데다 음식도 다 배달시켜 먹어서 설거지거리도 별로 없었다.
정리를 마치니 새벽 1시 반.
잠 못드는 남편이 말한다.
자기 평생 이런 생일파티는 처음이고 진짜 못 잊을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그런 생각 해 준 내가 정말 고맙단다.
진짜냐 반문하며 잠깐 생각해 보니 남편 뿐 아니라 아마도 우리 세대들은 모두가 그랬었을 거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지금 아이들이야 친구들 초대해 생일파티 화려하게 해 가며 컸지만
우리 세대는 먹고 살기에도 바쁜 우리 부모님들이 한 명도 아닌 여러 자녀들의 태어 난 날을 기념하기 위해 한 해에 몇 번씩 생일상을
차려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우리끼리라도 더 축하하고 더 위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마음 먹는 계기가 된 사건,
남편의 생일이었다.
"여보야, 다시 한 번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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