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은 광양으로 간다.
어머니의 팔이 골절되어 기브스를 했는데 오른손잡이인 어머니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다친 팔이 왼쪽이라 그나마 감사하달까.
어쨌든 식사며 씻는 것 등등 불편함이 어찌 한둘이겠는가.
나를 제외한 광양에 사는 착한 두 며느리가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다.
그러느라 이번 추석은 광양의 큰동서 집에서 모인다.
추석 전날 오전까지 일이 있는 관계로 '점심 무렵 출발해 광주 시아버지 병원에 들러 잠깐이라도 뵙고 광양으로 가겠노라'
늦게 가는 것을 형님께 미리 허락받았다.
한 번이라도 내 손으로 만든 음식 드리겠다 작정했던 지난 번 병원 방문과는 달리 이번에는 요리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빵과 음료만
사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광양까지 가니 오후 4시가 훌쩍 넘는다.
그래도 우리 큰형님은 아무 지적을 안 하신다.
지적은 커녕 전도 다 부쳐놨고 생선도 쪘으니 다른 건 할 거 없고 재미삼아 약간의 송편만 다같이 만들자고 하신다.
맏며느리인 내 큰동서는 화목한 친정에서 남자가 부엌일 하는 것을 보고 자라서인지 동생들 생각하는 게 진짜 언니같고 이모같다.
마음으로 베푸는 내 큰형님께 나는 결혼한 첫 해부터 지금까지 절대 변함없이 진심으로 윗동서로 예우한다.
-형제간 우애는 우두머리를 인정하고 따르는 데서 오는라고 생각한다.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추석 당일 차례와 아침식사 그리고 설거지까지 다 마친 시간, 가족들이 베낭에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긴다.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소풍을 갈 계획이다.
며칠 전에 전화로 내 의사를 물었었다.
난 안 가겠다 했고.
일에 지쳐 하루라도 쉬고 싶은데 캠핑카가 여수에 있으니 거기에서 잠깐이라도 지내다 와야겠고.
이유야 더 있겠지만 시간과 동선안배 상 그런 거다.
광주에 사는 작은 시누이도 동참한다는 나들이에 우리만 빠져 내심 남편에게 미안해 나를 캠핑카에 데려다 주고 참가하라고 하니
아니라며 괜찮단다.
미안...했다.
대신 우리끼리 여수구경을 하기로.
광양에서 이순신 대교만 건너면 여수란다.
그래서 순천으로 가려는 시어머니가 탄 차 포함 가족들 차량 두 대도 이 다리를 건너가다가 우리랑 헤어졌다.
우리는 여수로 그분들은 순천으로.
대교를 건너면 공장단지가 눈에 펼쳐지는데 뭔지는 모르지만 동글동글한 저것들이 나름 장관이다.
여수 돌산대교로 진입한다.
드라이브 코스가 있어서 그 길을 따라 쭉 가니 이런 안내표지가 나왔다.
우리는 전망좋은 곳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그런데 찾아가니 케이블카 타는 곳이 나온다.
언젠가 남편의 제자가 여수에 가면 다들 이 케이블카를 탄다며 한 번 타 보라 권했다고.
그래서 우리도 티켓을 샀다.
아메리카노 마시면서 구경해야지 하며.
그런데 식음료 금지란다.
할 수 없이 바깥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천천히 커피부터 마셨다.
그런데 가만 보니 우리같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창틀 여기저기에 다 마신 또는 덜 마신 일회용 커피잔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ㅋㅋ
드디어 탔다.
타자마자 촌스럽게 사진부터.ㅎㅎ
케이블카 구입 시 두 가지 중 고르라고 쓰여 있었다.
바닥이 보이는 것과 바닥이 안 보이는 것.
당연히 난 안 보이는 것.
왜냐면... 무섭거든.
모든 것이 다 아래에 있다.
마치 항공 뷰처럼.
가지런히 정박된 배도,
우체통같은 빨간 등대도...
다시 땅을 밟았을 때 나뭇가지엔 가을이 매달려 있었다.
아래로 보이던 것들이 이젠 뒤로 까마득하다.
노래에도 나오고 수학여행도 다니던 오동도.
'저거 내 거면 좋겠다' 했던 엠블호텔.
재차 촌스럽게 인증샸도.
내가 블로그에 웬만하면 인물사진을 안 올리는데 오늘은 제법 올린다.ㅎㅎ
눈부신 걸 잘 못 견디는 내 남편은 선글라스 팬이다.
남편 차에도 하나 내 차에도 남편 것 하나 더...
가는 곳마다 선글라스.
그렇다고 유행을 따지거나 과한 멋 부리는 사람은 절.대 아님^^
남편에겐 꼭 필요한 것이니 만큼 번번이 내가 자발적으로 사주는데 이번에 사준 것도 참 잘 어울린다.
3남 2녀 중 맨 끝 막내라 맏이인 나와는 많이 달라 못내 마음에 안 든 구석이 좀 있긴 하지만
참 착한 사람이다.^^
시원하고 재미있는 드라이브 겸 바닷구경을 마치고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서는데 웬걸..
아까와는 도로상황이 사뭇 다르다.
벌써 귀경이 시작된 걸까?
여기저기 차들이 제법 많아 시골답지 않은 정체를 보였다.
그래봐야 시골이지.
약간의 지체 끝에 캠핑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사실 어제 송편 만들고 설거지밖에 한 게 없는데도 피곤이 몰렸었다.
난 몸이 좀 피곤하면 눈이 충혈되고 모래라도 들어간 양 아파서 눈을 뜨질 못한다.
그런데 추석 아침이 그랬었다.
오른쪽 눈이 아파서 눈물이 줄줄 하염없이 나와 그 바람에 콧물까지...
울면 콧물도 나오는? 뭐 그런 증상?
마침 문 연 약국이 있길래 안약을 사서 넣긴 했지만 색깔도 파~란 것이 불량식품 같은 느낌이라 약에 믿음도 안 가고...
여하튼 이럴 땐 잠자는 게 약인데 하며 드라이브 내내 아픈 눈에 신경이 쓰였다.
캠핑카 문을 여니 침대가 나를 반긴다.
잘까??? 하다가 생각을 접었다.
우선 신발을 캠핑용으로 갈아 신고.
집에서 만들어 온 전동텅잭 덮개부터 씌웠다.
똑같은 걸 씌워뒀었는데 오래되어 빛에 바래 보기에 영 흉칙해 집에서 다시 만들어 왔다.
음, 역시 잘 맞는군.
시간 있을 때 난 꼼지락거리며 뭔가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집에서 일회성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종이박스로 수납가구도 만들고 노는 원단으로 별별 걸 다 만든다.
재봉틀질 또한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내 공부에 비하면 어찌 어렵겠는가.
시간없고 할 필요를 못 느껴서 그렇지 침대커버, 내 드레스, 러너 등등 자꾸 하다 보니 지금 웬만한 건 다 만들 정도의 솜씨는 되었다.
ㅋㅋ 셀프 자랑질~~~
남편이 청수탱크에 물을 길어다 넣어준다.
그래야 샤워하고 설거지도 하니까.
저거 참 좋다.
양 옆의 까만 테두리가 바퀴인데 바퀴의 직경이 커서 어디든 잘 굴러가고 40리터나 되는 용량으로 인해 몇 번만 다녀오면
금세 많은 양의 물로 가득차니, 길다란 호스 풀었다가 또 칭칭 감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어 이전 호스 사용때보다 오히려 편하단다.
돌산대교 쪽을 둘러보고 오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아직 해가 뜨겁다.
바깥은 바람이 너무너무 시원하건만 트레일러 안에 있자니 땀이 흐른다.
좋은 햇살만 보면 뭔가 널고 싶어지는 건 비단 나뿐 아닌 듯.
물 공급 마친 남편이 빨래 널듯 나뭇가지에 호스를 건다.
오랜만에 호스도 바짝바짝 잘 마르겠군 생각하니 내가 다 개운하다.
물 공급시 12볼트 전력을 사용하는데 바깥에 콘센트가 한 개 밖에 없다 보니 이것을 잠시 빼뒀었다.
데롱데롱 불쌍타 ㅋㅋㅋ
이제 잔일들은 마쳤으니 밥을 해서 먹고 좀 쉬어야겠지?
속이 느글거려 김치찌개 해먹을 생각으로 형님집에서 식탁에 놓였던 남은 김치를 봉지에 싸뒀었다.
"이게 뭐냐"
"캠핑카에서 해먹으려고요"
"새 김치 줄게"
"아니요 됐어요~"
그렇게 들고 온 김치다.
우선 밥부터 하고 그 다음 김치찌개.
소박한 식사를 준비한다.
그런데 허걱.
더우니 밖에서 끓이자는 남편에게 안에 있는 난 냄비만 전달해서 몰랐다.
바람막이가 어찌나 큰지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지 뭔가.
자그마한 바람막이만 보다가 이렇게 큰...병풍인 줄 알았구먼 ^^
압력솥이 아늑하다며 좋아했을 듯.ㅋㅋ
식사 마친 남편이 드릴을 집어든다.
또 뭔가 하려나 보다.
주방 문은 한 개의 열쇠잠금과 두 개의 일반잠금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중 열쇠로 잠김되는 곳이 안 잠긴다.
네오 캠핑카 사장님이 우리에게 인계하기 전 주방문을 잠그지 않고 이동하는 바람에 문이 벌컥 열리는 사고를 냈고
그로인해 외부주방 여러군데에 문제가 생겼는데 아직까지 문 교체는 물론 응급처치 삼아 케이블타이로 묶어 둔 쇼바까지 그대로...
일 년이 넘도록 아무것도 교체 해 준 게 없어 골머리를 앓는 중인데
그 사고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잠금이 안 되는 것을 남편이 고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또 저렇게 하고 정말 오래도록 고쳤다.
비전문가이지만 마음 먹고 하다 보니 완벽하지는 않아도 이제 잠글 수는 있게 되었다.
남편 승리다.
가을답지 않게 날이 더워 몸만 움직이면 땀나던데...
남편이 머리와 몸을 쓰며 고생하는 동안 난 햇살에 토끼 줄 사과껍질과 새로 만든 의자커버를 말렸다.
뭉게구름 쇼를 보면서 이 생각 저 생각...
말없이 생각이란 것을 많이 하노라니 하루 해가 저문다.
하룻밤도 안 자고 갈 것이기에 미련없이 어닝과 확장박스를 접는다.
다음 주말엔 서울 친정으로 명절인사 가야 하니 못 오고 그 다음엔...
어떻게든 자주 와보려고 작정은 하지만 언제 올지.
집으로 가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가 넘었다.
도착하면 11시.
광주를 거쳐 광양으로 또 여수로...
평소 같으면 다리 아프도록 앉아 전이라도 부쳤겠지만 형님이 다 한 덕에 별로 일을 하지 않아서일까?
명절쇠러라기보다는 마치 긴 드라이브를 한 느낌이다.
'내일은 바깥일 하기 전에 밀린 집안일부터 해야겠군.'
물건, 동물, 사람 불문하고 집안의 모든 것의 질서가 잘 잡혀야 바깥일 또한 잘 되니까.
모두 가화만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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