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늘 우중충.
어쩌다 하늘에서 빛이 나온다 해도 이내 힘을 잃는다.
흰 눈이 바닥으로 하늘로 훠이훠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이 당분간은 이 기세를 꺾지 않을 듯 보인다.
창밖으로 보는 바깥은 그나마 낫다.
미끄러운 도로가 무서워 차가 도통 움직이질 않으니 나다녀야 할 사람들의 발이 묶여 생활이 뒤죽박죽 말이 아니다.
전주는 언제나 천재지변으로부터 예외였다.
그래서일까.
이번도 역시다.
군산이며 어디며 전주 주변은 폭설로 눈이 쌓여 차가 못 움직인다 난리인데 전주는 이만큼만으로도 많이 왔다 탄성을 지른다.
나뭇가지에 눈이 얹혀진 게 어찌나 예쁘던지 새벽 1시 반이 넘은 시간에 우린 오히려 밖으로 나갔다.
뽀드득 뽀드득...
얼마만에 듣는 소리인지.
우린 아파트 동을 나서자 마자 있는 지하주차장 입구 덕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의 무관하게 차에 탈 수 있다.
그래서 눈이 많이 와도 발에 눈 묻힐 일이 거의 없어 부츠 신을 필요조차 못 느끼고 신발에 밟히는 눈의 비성 듣는 일 또한 없다.
그러니 이 소리가 왜 반갑지 않겠는가.
끼악끼악 내가 지르는 소리에 뽀드득 뽀드득 눈이 지르는 소리를 새벽공기에 실었다.
"남들 잠 깨겠다"
"그렇지.. 지금 새벽이라 잠 잘 시간이지..쉿."
약 한 달 전.
그때만 해도 분명 날이 푸근했었다.
캠핑 트레일러가 장기간 주차되어 있는 곳 뒷편 땅에 파를 심어뒀었는데 그게 어찌나 잘 자라던지 위의 파란 잎을 잘라 먹고 나면
자라고 또 자라 계속 빳빳한 신선한 파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국에 넣고 라면에 넣고 나물무침에 넣고 계란말이에 넣고...
그렇게 우린 어쩌다 가는 캠핑때면 야금야금 그 파를 먹으며 즐거워하곤 했었다.
작년의 일도 아니고 불과...
그 사이 난 첼리첼로의 정기연주회를 했고
베스트챔버의 연주를 했다.
-물론 다른 연주도 많이 많이... 하지만 이 둘은 나와 내 남편이 대표로 있는 단체라 그 중 가장 신경이 쓰였다는...뭐 그런 거다.-
베스트의 연주가 있던 날 하루 전 날까지도 눈이 많이 내리고 추웠다.
원망스러운 하늘 한 번 올려다 보고 매정한 날씨 예보를 귀로 들으며 연주에 지장 많겠다 정말 걱정 많이 했다.
연주회의 객석은 날씨 또는 사회 전반적인 행사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우리도 날씨에 민감할 밖에.
결국 빈자리가 많았고 우린 그렇게 조금 섭섭한 마음을 안고 연주를 마쳤다.
"이렇게 좋은 음악회를 포기하다니... 사람들도 참 복 없다.ㅜ"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그 후로도 눈이 참 많이 내렸다.
각각 자가운전을 하는 음악인의 특성 상 안전사고가 염려된다며 오케스트라의 연습이 갑자기 취소되고 레슨도 줄줄이 못 간다 연락오고...
눈길에 속수무책인 도로처럼 내 스케줄이 마구 엉킨다.
그덕에 했다.
욕실 리모델링.
전문기사 두 사람이 아침부터 하루종일 먼지나도록 열심히 일하더니 이렇게 바꿔놨다.
'안 좋은 일을 반대로 생각해 좋은 일로 바꾼다.'
그게 내 인생살이의 길잡이였다.
일이 몽땅 연기되고 취소되니 '잘 됐네 리모델링이나 하자.' 이렇게 시작된 일.
2002년 겨울, 서울에서 살다 일 때문에 전주로 이사오면서 '딱 3년만 살자' 하며 집 전체를 리모델링 했다.
그런데 화장실은 그대로.
어차피 3년만 살 생각인데 그런대로 화장실이 깨끗하길래 그렇게 했던 건데 어찌하다 보니 그만 12년 세월이 꽉 찼지 뭔가.
그사이 초등학교 6학년 졸업반이던 큰딸은 25살, 유치원에 다니던 작은딸은 고등학교 2학년생이 되었고
그 아이들은 독일로 미국으로 각각 유학을 가 있다.
이제 집에 남은 건 우리 둘.
'겨우 둘이 사는데...'
이사 할 이유조차 없어진 지금, 차선책은 리모델링인데 살고 있으면서 레모델링은 먼지때문에 거의 불가하니 부분적으로 조금씩
시간나는 대로 고칠 밖에.
"일단 욕실은 성공이다.ㅎㅎ"
리모델링만 잘 하면 아파트는 완전 새 것이 된다.
집의 위치며 동네가 마음에 드는 지금, 난 또 다른 곳의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먼지가 장난이 아니다.
욕실 하나만 하는데도 거실 천장까지 곳곳에 먼지가 앉고 심지어 앞집의 현관 문 손잡이며 통로 계단까지...
결국 통로는 물론 앞 집 현관문까지 내가 다 닦아드렸으니.
짐을 다 빼지 않고 하는 리모델링이라...
감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하긴 덕분에 난 하루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오랜만에 여유 느끼며 이것을 할 수 있었다.
첼리첼로의 정산서류 작성.
전라북도의 보조금을 일부 지원받는 연주회라 이 서류작성은 필수인데 작년과 양식이 또 달라져 뭔가 서류들이 새로웠다.
모르겠다 싶으면 도에 전화 해 물어보고
또 모르겠다 싶으면 홈페이지 고객센터에 전화 해 물어보고...
ㅋㅋㅋ
뿌듯하다.
안 좋은 날씨가 사람들의 발길을 막았으나 그래도 우린 어김없이 연주 잘 했고,
스케줄 헐거워진 바람에 하루 시간 비워 욕실 리모델링이라는 큰 숙제를 할 수 있었고,
욕실 리모델링 하는 것 지켜봐야 해서 어디 나가지도 못 하고 집에 꼼짝없이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그 바람에
난 해야 할 정산을 다 마쳤으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본 하루를 만들어 낸 셈이다.
'안 좋은 일을 좋은 쪽으로 해석 해 좋은 일로 바꾸자.'
이번에도 내 긍정 마인드 승.
앗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