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양쪽 눈의 시력은 -7.5 디옵터.
고도 근시에 각막 손상도 있어 콘택트렌즈 사용도 못한다.
대학생 때인 1982년 무렵 소프트렌즈라는 게 출시되면서 열풍이 일어났고 그에 편승해 결혼 무렵까지 야무지게 잘 사용했었는데
결혼식 하루 전 문제를 일으켜 더 이상 사용이 불가 한 눈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빙글빙글 도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신혼여행 기간을 보내느라
한참 외모에 신경 쓸 나이인 나는 신혼여행의 의미고 뭐고 안경 때문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는 기억만이 추억으로 남는다.
나이가 한참 들어 이제 노안이 왔다.
거기에 백내장.
하기야 음악 하는 사람들은 깨알 같은 악보를 눈에 달고 사느라 눈이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게 사실이다.
레슨의 경우 내 레슨실, 늘 같은 장소에서 하니 조명에 신경 써서 밝게 해 두었지만 각종 팀의 각각 다른 연습실은 저마다의 조명 상태를 갖고 있기에 어떤 곳은 어두워 작은 악보의 표기가 안 보일 때도 있고 또 어떤 곳은 먼지가 많아 눈이 따가운 채 몇 시간 방치되기도 한다.
그러나 원인 중 가장 큰 건 뭐니 뭐니 해도 유전일 것이다.
내 엄마가 고도근시자 이니까^^
수술이라...
내 엄마의 단골 병원인 서울 아산병원에서 수술을 하면 참 좋겠지만 그럴 시간까지는 없는 데다
요샌 워낙 수술 잘하는 병원이 지방에도 많이 있으니까...
늘 다니는 전주의 한 병원에서 수술 일정을 잡았다.
한 눈 먼저 하고 다음 날 한 눈 마저 한다는 계획으로 각종 검사를 마쳤다.
망막에 구멍들이 많다 하여 레이저로 파바박 지지는 처치도 이틀에 걸쳐 시행했고 수술에 앞서 주의사항이나 알고 있어야 할 내용도 숙지했다.
근데 눈이라... 무섭다 ㅜㅜ
천 냥 중 눈이 구백 냥 이라는데...
긴장되는 마음으로 수술.
드디어 했다.
그런데 저런... 충혈이 되었네.
의사 말이 저렇게 되기도 하는데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란다.
믿어야지^^
드디어 수술이 마무리되었다.
어쩜... 먼 곳의 사물이 너무나 깨끗하고 선명하다.
운전도 안경 없이 잘할 수 있게 되었고 작고 낮은 내 코 위에 무거운 안경 올리고 다니느라 더 이상 힘들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먼 곳 사물에 비해 가까운 것들이 너무나 흐릿하다.
밥상 위 음식들이며 보면대 위 악보가 흐릿해 잘 안 보이고 바늘에 실을 꿰지 못하겠고...
무엇보다 선명했던 소중한 초점 하나를 잃었다는 게 답답하고 속상하다.
무슨 얘기냐 하면.
예전에는 안경을 벗고 눈 가까이에 대면 글씨고 사진이고 악보고 뭐든 아주 선명하게 잘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없어진 것이다.
주변 상황이 그럭저럭 두루두루 잘 보이긴 하나 선명하게 안 보이니
뭔가를 선명하게 봐야겠다 생각될 때면 나도 모르게 책이고 사진이고 바늘이고... 눈 가까이에 갖다 대는데 번번이 실패다.
에효 답답해라...
그래서 나의 심리교육을 시작한다.
예전에는 어땠더라????
예전이라...
컴퓨터로 글을 쓸 때 예를 들자면 '때'와 '떄'가 잘 안 보여 오타를 치고도 모른 채 지나갈 때가 아주 많았다.
언제부터인가 악보가 잘 안 보여 안경사에게 가서 말을 했더니 노안이라 어떻게 해도 교정이 안 된다고 했었다.
그래서 포기한 채 대충 보고 살았는데
악보의 작은 기호들이 안 보이는 바람에 실수할 때 그 스트레스는... 이제 이 일을 그만해야 하나 할 정도로 심각했었다.
운전도 마찬가지.
먼 곳은 흐렸고 이정표는 가까이에 와서야 보였으며 밤이면 불빛이 퍼져 보였다.
밥상 위 내 밥그릇 속 밥알이 안 보인 채 밥 먹은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고
핸드폰의 글씨를 보기 위해 글자 크기를 크게 조정해야 했고...
헤헷 그 외에도 아주 많다^^
그런데 지금은.
컴퓨터 화면의 오타 정도는 바로 잡아낼 수 있을 정도의 나안시력으로 탈바꿈했다.
비록 보면대까지의 거리에 맞춘 안경을 착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쉬 피로하다는 단점은 있으나
악보도 선명하게 보인다.
야간 불빛의 형태가 과녁 같은 빛 번짐이 있긴 하나 운전에 전혀 지장이 없고 이정표고 뭐고 오히려 더 잘 보인다.
밥그릇의 밥알이나 반찬 그릇이 희미하게 보여 불편하긴 하나 이 역시 잘 보고 싶을 땐 악보 볼 때 쓰는 안경을 착용하고 먹으면 되니
전혀 문제가 없다.
선명하진 않지만 핸드폰의 글자 크기를 조정하지 않고 깨알 같은 크기의 글자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불편할 때마다 매일 나에게 되뇐다.
편하고 불편한 점이 달라져서 그렇지 예전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더 낫다고.
수술 한 당시보다 시력이 조금 떨어지긴 했으나 나는 이제 이 모습으로 다닌다.
수십 년 내 모습이 '안경잡이' 였기에 타인들의 혼란을 덜어주기 위해 보안용 안경 또는 렌즈 없는 공갈 안경을 사용하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안경을 벗고
악보 볼 때는 70cm 거리를 잘 볼 수 있게 만들어진 안경, 책을 보거나 바느질을 할 땐 40cm 거리의 안경을 사용한다.
그러느라 아주 약~~간의 불편함은 있으나
수술 하나로 나의 인생이 조금 더 나아졌으니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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