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어느 날 카톡의 상태 메세지를 보고 난 감동했다.
내 둘째 딸이 이런 말을 자신의 카톡에 올렸다.
<잊지 말자,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다.>
'ㅠㅠ'
딸의 고민이 어느 정도 가신 시점이어서일까,
그 한 줄의 글에 난 눈물이 핑돌고 가슴이 찡해져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많은 시간 지났다.
첼리첼로 연주를 마치고 안도감과 아쉬움이 겹치던 어느 날, 갑자기 유학 중인 두 딸이 생각났다.
고맙고 기특한 내 아이들.
그래서 나도 올렸다.
<잊지 말자, 나는 내 두 딸의 자부심이다.>
두 딸 사랑하는 마음에 나의 진심을 담아...
그렇게 나는 더더욱 열심히 살겠노라는 나의 각오를 그 한도막의 글에 절절히 싣고 있었다.
왜냐면 나는 두 딸에게 존경받는 엄마니까.
누구나 다 자녀에게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존경받기 위해 특별히 노력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 일을 사랑하고 미래를 설계하며 나름 지혜롭게 살다보니
이런 평가?를 받는다.(뿌듯^^)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소중하지 않겠는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바쁘다는 이유로 통 찾지 않던 내 시부모님이 생각났다.
중증치매라 우리를 전혀 모르지만 그래도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안심이었던 시아버지가 요샌 병원에서 나오질 못하고 계신다.
장기가 약해졌는지 한 번 문제를 일으켰던 장기 속 상태가 영 좋아지질 않고 있고 여기저기로 문제가 옮겨가기만 한다.
하루종일 병실 침대에서 얼마나 지루하고 힘드실까...
남편과 시간이 안 맞아 고민을 하다 나 혼자라도 가 봐야겠다 싶어 급히 길을 나섰다.
시간 아까우니 얼른얼른 부랴부랴.
그렇게 도착한 광주의 한 병원.
한 열흘 전에 가고 처음이라 별일 없으시려나 생각하며 문을 연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그 사이 왜 이리 마르셨는지...
누군지 알겠냐며 막내아들 안사람이노라 나를 소개하고 시아버지의 손을 만지는데 손도 붓고 얼굴도 무표정.
대화를 지속하자니 뭔가 할 말은 없고...
그런데 마른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만 많이 짠하다.
그러던 차에 아버지 드실 과일이 다 떨어졌으니 사놓고 가라며 간호사가 말을 건넨다.
일단 밖으로 나갔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이방인이라 차를 타고 주변을 얼마나 돌았는지.
시아버지가 필요로 하는 과일은 홍시와 바나나였다.
간호사 말로는 음식을 드리면 입에 담고 영 삼키려 들지를 않으셔서 결국 뱉어 내 엷은 미음으로 모든 음식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나?
그래서 마르셨을까?
혼잣말을 하며 바나나와 홍시를 찾아 열심히 뒤지고 다니다 결국 과일가게를 발견했다.
많이 사 봐야 상해서 못 드실 테니 뒤에 또 오실 다른 보호자에게 나머지는 맡기기로 하고 우선 드실 양만 샀고
간호사에게 줄 귤이며 떡을 준비했다.
건강하셨을 땐 정말 점잖고 조용한 어른이셨다.
당신 스스로의 모습이 이렇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생각하니 차라리 절대 안 돌아오는 게 낫겠다
스스로 도리질하며 그렇게 병실을 떠나 이번엔 시어머니에게로 향한다.
신김치 싫어하시는데 김장을 못 해서 어떻게 밥을 드시나 싶어 내가 만든 멸치볶음과 학부형이 가져다 준 새 김장김치를
집에서 준비해갔었다.
별 것 아닌 것에 너무 고마워하시는 내 시어머니다.
내가 가면 손수 밥 해주시고 설거지도 안 시키는 시어머니가 그날도 전을 부쳐주시며 먹고 가라 하신다.
병원에서 시간이 지체된 바람에 앉아서 먹을 시간이 없으니 갖고 가면서 운전 중 틈틈이 먹겠다며 따끈한 전을 포일에 대충 쌌다.
그렇게라도 해야 어머니의 마음이 편하실 테니까.
오는 길 내내 참 생각이 많았다.
함께 못 간 내 남편이 부모님 정황에 대해 궁금해 할까 봐 일부러 아버지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었는데 그걸 본 남편이
가볍게 반응을 했다.
정말 많이 마르셨다고.
말은 달랑 한마디 가볍게 했지만 어찌 마음까지 가벼웠겠는가.
힘들었을 것이다.
내 딸들도 언젠간 나의 이런 마음을 느낄 날이 오겠지?
우리가 늙어 꼬부라지고 자신들의 아이들이 커갈 무렵이 되면 아마도 우리처럼 자신의 부모님의 쇠퇴에 가슴이 시릴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ㅎㅎ
서로 젊고 건강한데다가 각자 자신들의 일이 바빠 아무 생각이 없을 듯.ㅋㅋ
독일에서 홀로 연주하랴 공부하랴 정신없는 우리 집 큰 딸.
미국의 문화와 학업을 배우고 접하느라 무한 정진 중인 우리 둘째 딸.
건강검진 받으러 가는 날이 되면 잘 받고 오라 문자하고, 다녀오면 결과 어찌되었냐 문자하고,
아프면 밥 잘 먹고 약도 잘 챙겨라 문자하는 우리 두 딸들이 이번 첼리첼로 연주에는 어쩐 일인지 반응이 늦었다.
"바빴나 보지 뭐..."
"늘 하는 연주라...'
괜찮다.
감사하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유학생활 잘 해줘 기특하고
이렇게 서로 떨어져 사는데도 불구하고 자매 사이가 돈독해서 고맙고
내가 많이 바빠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정성어린 손길 많이 못 받은 아이들인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도 불만하지 않아 이쁘다.
첼리첼로 연주 며칠 전이었다.
서울에 계시는 친정 부모님이 친척 결혼식 참가 차 겸사겸사 우리집에서 하루 주무신 일이 있었다.
그런데 노인들이라 그런지 밍크며 모피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옷 입은 게 왠지 후줄근하고 힘도 없어 보여 마음이 짠했다.
시간이 없어 급한대로 근처에 가서 바지와 블라우스 등 간단한 옷을 사 입혔는데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보이는 것이다.
그랬다.
노인은, 꼼꼼히 살펴 노인 스스로 말하기 전에 젊은 사람이 챙겨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내 아이를 키울 땐 어디 부족한 건 없나 아픈 곳은 없나 불편해보이진 않나... 크고 작은 여러가지를 알아서 신경썼는데
사느라 바쁘다 보니 늙은 부모는 뒷전이 되었지 뭔가.
살다보면 또 지금과 똑같은 행동을 할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때만은 그랬다.
반성...
모시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챙기다 보내드렸는데
내가 너무 부족한 딸 같아 두고두고 미안했다.
시댁 부모님도 친정 부모님도 어떤 상태여도 상관없으니 오래오래 사셨으면...
그리고 내 자녀들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하나님의 소관인 부분까지 괜시리 걱정하다 날이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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