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왔는데도 날이 푸근해 이게 정말 겨울 맞나 했었는데
이젠 그 말이 무색할 만큼 춥다.
첼리첼로의 정기연주가 있었다.
전날과 다음날은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렸는데 오직 그날만은 맑았다.
전석 매진.
'좌석이 다 나간 상황이라...'
현장에서 티켓구매할 생각으로 예매하지 않고 그냥 오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텐데 일부러 오는 그 발길들 그냥 돌아가는 일이 생길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티켓을 예매했지만 사정이 생겨 못 온 사람들의 좌석표 몇 개가 남아 있었고 그것을 단원 가족들이 내어 놓아
다행히 불상사를 면할 수 있었다.
이제 준비.
연주 듣지 내 얼굴보나 싶어 외모꾸미기에 큰 의미를 두진 않지만 그래도 무대 매너는 갖춰야 하니 복장 점검하고 머리며 얼굴 등
모든 것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피부도 톡톡, 입술도 반짝반짝...
첼리첼로는 총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부터 2파트, 1파트, 그리고 나, 3파트, 4파트.
하지만 파트를 나누는 숫자는 그냥 숫자일 뿐 다른 의미가 없다.
모든 곡을 편곡해 우리에게 맞는 스타일로 바꿔 연주하기에 그저 편하게 그렇게 부를 뿐이다.
원래 연주 중엔 사진을 찍거나 녹음할 수 없다.
저작권이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에게 허락받지 않는 자가 이를 행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렇지만 몰래 찍었단다.
첼리첼로 단원의 지인이^^
괜찮다.
우린 그런 거 상관 안 하니까.
모짜르트 디베르티멘토 1번 전 악장, 피아졸라 사계 중 봄, 바하 첼로 무반주 중 1번, 파헬벨 캐논, 거위의 꿈...
그 중 메인이었던 마지막 곡은 캐리비안의 해적 ost.
연주를 한 주 가량 앞 둔 어느 날.
지난 연주 땐 크리스마스를 맞아 빨간 망또를 어깨에 두르고 캐롤을 연주했는데
이번 연주에 이벤트 될 만한 게 뭐 없을까 의논하다가 해적에 어울리는 뭔가를 하자는 의견이 나와 모자를 쓰자는 쪽으로 결정이 되었고
우리는 즉시 모자 구매에 나섰다.
모자가 머리 크기에 안 맞아 약간의 손질을 했고.
드디어 연주.
이렇게.ㅋㅋ
모자를 쓰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좋은 의견이라고 했더니 한 제자가 걱정을 했다.
"선생님, 괜찮으시겠어요?"
여러가지 의미다.
모자 따위를 쓰는 선생님이 상상이 안 간다는 뜻이기도 하고 모자를 쓰고 지장없이 연주할 수 있겠냐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난 괜찮다고 했다.
괜찮을 뿐 아니라 더 한 것도 좋은 연주를 위해서라면 한다고 대답하니 분위기가 한결 밝아진다.
그렇게 해서 마련된 이벤트다.
오로지 관객을 위해.
우리의 마음을 읽어서였을까.
감사하게도 관객의 반응이 너무나 좋았다.
마지막 곡 하나를 남겨 놓고 모든 출연자들이 무대 뒤로 나가 모자를 쓰고 다시 나타났을 때 관객들이 술렁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자 하나로 연주자와 관객의 거리가 한 뼘 거리로 좁혀졌으니 대 만족.
우린 모자가 흔들리고 머리가 더워서 죽을 지경이었지만ㅋㅋㅋ
또 한 사건.
내 악기의 펙 하나가 펙박스에서 확 풀려버리는 바람에 연주 도중 급히 줄을 올려가며 계속 연주하는 헤프닝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광경이 관객들은 또 하나의 신기한 경험이었는지 연주 후 여러사람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었고
이 또한 해적모자에 버금가는 추억의 한 소재가 되었다.
앵콜로 홀베르그 모음곡의 한 부분을 연주했고
11월 29일, 첼리첼로의 아름다운 겨울이 막을 내렸다.
이제 다음 연주는 베스트 스트링 챔버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
첼로앙상블은 저음악기로만 구성되어 한 음색밖에 낼 수 없지만
고음인 바이올린과 중음인 비올라, 저음인 첼로, 초저음인 콘트라베이스가 곁들어 연주되는 챔버오케스트라는
훨씬 다채롭고 웅장한 소리가 난다.
'같음'과 '다름'의 조화.
그래서 앙상블은 솔로에게는 없는 매력이 있다.
'다른' 두 사람이 모여 가정이라는 조화를 만들어 가는 여느 부부처럼 말이다.
노력해야지.
가정을 완성하려 노력하듯 내 앙상블의 완성을 위해.
또 다른 겨울이 다가온다.
베스트의 겨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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