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웅포.
붉은 물결이 너울대는 강가에 선다.
금강에 드리운 저녁 노을이 장관이다.
캠핑트레일러 교체를 결정한 후 일어난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생각처럼 안 되어 속상했던 일, 입장 다른 타인으로 인한 마음고생, 허망했던 약속, 말이며 행동의 실수,
그러나 그 뒤를 채우는 고마움....
캠핑트레일러 바꾼다 고친다 하며 우왕좌왕, 웃고 삐치고 또 웃는 사이.
부지런한 여름이 봄을 제쳤다.
허덕허덕.
한낮의 숨막힘을 견뎌보고자 에어컨을 틀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에어로라이트의 에어컨이 선풍기수준이다.
공황장애가 있었던 나는 지금도 꽉 막힌 좁은 공간, 숨막히는 온도를 견디지 못해 한겨울에도 문 꼭꼭 닫는 걸 싫어한다.
그러니 히터는 몰라도 에어컨은 필수.
뜨듯미지근한 트레일러에서 도망치듯 서둘러 빠져나온다.
밖으로~
분명 아무도 없는 빈 사이트라 벤치에 앉았었는데 커피 한 잔 마실 새 없이 누군가의 하루문패가 걸린다.
폐끼칠까 봐 조용히 일어섰다.
핸드폰의 온도를 보니 33도.
불볕더위다.
"언제 여름이 됐지?"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불과 몇달 전이다.
같은 장소, 웅포에서의 겨울같던 봄이 생각난다.
군산 새벽시장에 간다는 캠핑지인의 뒤를 따르느라 알람에 의지해 새벽잠 깨고는 KTX같던 지인의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그땐 이 불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 모른다.
무질서 속 질서,
살아있는 소리,
낯설지만 결코 싫지 않은 비릿한 냄새...
뒤이어 간 빵집은 더 볼 만 했으니.
줄 서서 빵을 사고 줄 서서 기다린 그 오랜시간도 모자라 또 다른 줄 뒤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 빵값 계산을 한다.
'나 같으면 차라리 안 먹고 만다.' 했을 정도로 진기한 모습이었다.
봄이라 하기엔 아직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뜨듯한 국물에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들렀다.
'흐늘흐늘한 몸에 먹을 거라곤 별로 없는 지방덩어리 생선에게서 이런 시원한 맛이 나다니...'
꼴깍.
지금도 매콤했던 물메기탕의 국물맛이 잊혀지질 않는다.
그사이,
온갖 봄꽃이 피다 졌고.
맹렬한 기세로 서있던 양파들도
하나 둘 이렇게 눕더니 이젠 아예 서있는 애들을 찾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강물같은 시간은 여기에도 머물렀다.
야속한 세월 탓에 빛 바랜 의자.
내 마음이 공허해서일까 오늘따라 이녀석들이 허전하고 가엾다.
시간이 흠이다.
후방등 교체며 몇 가지 덜 마친 일을 하려고 캠핑장으로 업체 직원이 왔었다.
캠핑장에서 일을 하겠다기에 장비 없어 일 못하는 일 안 생기게 하려고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미리 적어줬었다.
그러면 그 목록을 보고 '어떠어떠한 일을 하려면 어떤 부품이 필요하니 가져가야겠다' 생각하고 철저한 준비를 해올 줄 알고.
그런데 실리콘도 없고 구멍뚫을 드릴부품도 없어서 여기에선 일을 못하겠단다.
그렇다면 온김에...
시원치 않은 에어컨의 확인을 부탁했다.
그런데 손을 뻗어 확인하던 찰나,
빠지직.
송풍팬의 일부가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지며 직원의 팔목 부분에 생긴 자그마한 상처에서 피가 난다.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줬다.
그만하길 얼마나 다행인지.
사장님과 통화를 했다.
이러저러하니 전주로 트레일러를 가져가서 일하는 게 좋겠고... 이리저리 되면서 에어컨 팬이 망가졌고 직원이 조금 다쳤노라고.
평소의 친절함이 사라졌다.
그것도 내 이야기 마저 듣기도 전에 이미.
끙.
나도 나름 힘든데...
나는 늘 말한다.
서로 다른 입장차이에서 대해.
불과 며칠 후면 방학맞은 현민이가 미국에서 온다.
난 그 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두고 내 딸을 맞고 싶었다.
청소된 집, 정리된 딸의 방, 바뀐 캠핑트레일러에서의 편안하고 안락한 캠핑...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캠핑트레일러는 내 맘대로 못한다.
시무룩.
휴.
아직도 안 끝난 에어로라이트 관련 일.
어서어서 이 시기가 지났으면 좋겠다.
언젠간 교체 수리 일이 모두 끝날 것이고 우린 분명 좋은 기억만 추억으로 남길 테니, 시간이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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