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면 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연주가 많고 입시의 막바지에 이런저런 자잘한 일까지 많아져 자칫 잘못하면 일이 마구 꼬이고 난감한 일까지 발생하니까.
사진 속, 제자들과 가을맞이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찬바람 쌩쌩부는 겨울이다.
첼리첼로가 연주하던 날.
리허설 시작이 임박할 무렵 아직 도착 전인 제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주회장으로 오던 도중 전방의 차가 신호를 위반하는 바람에 자신의 차와 부딪쳤단다.
다행히 몸이 다치진 않아서 연주에 지장은 없겠지만 두 연주자가 함께 리허설에 늦겠다고.
우리는 연주 당일엔 늘 긴장한다.
오케스트라처럼 많은 인원이 함께 하는 연주라면 그나마 괜찮은데 -물론 그것도 그러면 안 되지만-
소규모 연주의 경우엔 한 사람에게 생긴 문제도 연주에 엄청난 지장을 주게 되니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안전이 무엇보다 앞서 중요한 사안이 된다.
다치지 않아 다행이니 침착하게 정리하고 오라 말을 한 뒤 무대에서 각자 개인연습을 했다.
연주를 하다 보면 교통사고 뿐 아니라 별 사건사고를 다 접한다.
줄이 끊어져서 연주 도중 줄을 갈기도 하고 활을 떨어뜨려 활이 부러지기도 하고...
꽉 끼는 드레스의 뒷지퍼가 쫙 벌어져 등이 노출되는가 하면 어깨끈 없는 드레스가 점점 내려가 난감한 일을 겪기도 하고
길다란 드레스자락으로 인해 악기들고 걷질 못해 쩔쩔매고, 높은 신발 때문에 넘어지고....
우리에게 드레스란 소방관이 일할 때 입는 소방복과 같은 개념의 <작업복>이다.
그래서 난 내가 주관하는 연주에서 만큼은 드레스에 대한 정신교욱을 반드시 시킨다.
제발 너무 타이트하게 입지 말고 가능하다면 어깨끈을 달되 연주하는 도중 내려가지 않게 철저히 준비하고 드레스 앞자락의 길이 또한
너무 길지 않게 조정하라고.
악기는 물론이고 자신의 몸 또한 악기이니 안팎으로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
째깍째깍...
시간이 갈 수록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정이 타들어가고 기다리는 것에 한계가 느껴질 무렵 두 제자가 가뿐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얼마나 미안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 눈앞에 놓인 현실, 연주가 불과 두 시간 남짓 남았다.
늦어도 한 시간 전엔 관객 입장을 허용해야 하니 최대한 빨리 무대를 비워야 한다.
리허설을 속히 마무리했다.
들어오는 관객들로 객석이 부산할 시간.
우린 무대 뒤에서 곧 있을 연주를 준비한다.
잠시 숨을 고르며 출출한 배를 과일과 김밥으로 달래는데 카메라를 들고 방문 온 제자가 자신의 작품을 보여준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제자인데 얼마 전 결혼식을 했고 이제 곧 독일로 다시 들어간다.
한국인인 신랑이 아헨공대를 졸업하고 그곳에서 취직을 해 독일에서 신혼살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함께 연주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를 응원하러 달려 온 녀석이 너무나 고맙고 예쁘다.
부디 행복한 가정 꾸리길.
그러는 사이 아가씨 그룹이 삼삼오오 모인다.
화장고치며 수다, 머리만지며 수다...
깔깔호호 분위기가 아주 좋다.ㅎㅎ
여기는 기혼 그룹.
우리는 먹는다.
화장도 안 고치고 그저 먹기만...ㅋㅋㅋㅋ
드디어 연주 시작.
원래는 연주장에서의 사진촬영이나 녹음이 금지인데 연주를 보러 온 제자 한 명이 직원 몰래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은 모양이다.
연주를 끝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문자가 띠링 울려 보니 사진 몇 장이 전송됐다.
이건 앵콜연주 '크리스마스 캐롤'을 준비하고 있는 장면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잔잔한 캐롤과 망또로 이벤트적인 앵콜을 연주했다.
모든 연주가 끝났다.
이날 이 인사는 적어도 나에겐 특별했다.
무사히 연주를 마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했고 사고 난 제자들 몸이 다치지 않아 너무너무 감사했으니까.
한 해가 며칠 안 남은 지금.
조용한 연말을 보내면서 난 생각한다.
앞에서 뒤에서 변함없이 보살펴주는 남편,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면서 긍정적 마인드로 살아가는 우리 딸들,
내 마음 편치 않을까 늘 눈치껏 살피고 엄마처럼 따르는 내 제자들...
모든 게 고맙다.
내년에도 난 뭔가를 열심히 하겠지?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과 노력을 공유하면서 만들어 갈 새 해 2014년이 기다려진다.
우리 가족, 내 제자들, 우리 단체 첼리첼로에게도 빛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