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방화동은 전주의 뜨거운 열기와 상반되어 찾지 않을래야 찾지 않을 수가 없는 매우 좋은 휴양지었다.
그러던 곳이 요즘은 북적대는 인파로 인해 휴양까지 바라기엔 다소 무리가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이만한 곳이 없으니 습관적으로 갈 수밖에.
여름내내 트레일러를 장박해 두고 시간날 때 종종 드나들면서 쉬던 시스템을 정리하러 방화동을 다시 찾는다.
사실 세워두고 자주 못 가 마음이 조금 불안했었다.
가까운 곳이라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소일삼아 드나들기엔 무리가 있는 거리라...
너무 오랫동안 세워뒀더니 개미며 거미등 작은 곤충들이 우리 대신 트레일러 안까지 침투했고 심지어는 밖에 세워 둔 의자다리엔
개미가 알을 낳는 일까지 벌어졌다.
으악..
깨끗. 깨끗....
탈탈 털어가며 장비정리를 열심히 한다.
그나저나 더위에 지쳐 들어갔지만 많은 자동차에 치어 못 나오던 생활이 마무리되니 너무나 좋다.
또 보자 인사하며 트레일러와 함께 방화동을 나선다.
여름동안 잘 쉬었으니 떠날 때 미련 또한 없다.
올 여름은 참으로 더웠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데 밥이라도 하려고 주방에서 일을 할라치면 땀이 비오듯 쏟아지니 나 혼자만의 중무장 된 희생정신이 아니었다면
가족들이 밥을 굶을 지경이었다.
내가 그 정도니 토끼인들 힘들지 않았겠는가.
풀도 안 먹고 움직이지도 않고 하루종일 쓰러져있는 게 다반사.
털덩이를 어떡하면 좋냐고 안타까워하다가 묘안을 생각한다.
물병을 얼려 토끼장에 넣어줬다.
처음엔 앞발로 긁어대고 밀어내고 머리로 굴려내더니 위험한 게 아닌 걸 알았는지 제법 물병과 친해져 아예 언 물병 옆에 등을 기대고 쉰다.
우리도 얼음 하나 가슴팍에 안고 있으면 더위가 싹 가실 텐데 하물며 몸집 작은 토끼는 얼마나 효과가 좋겠는가.
녀석...
함께 살며 정들어서인지 하는 짓이 참 예쁘다.
토끼는 과거 사춘기었던 시기, 둘째딸 현민이에게 준 나의 선물이었다.
강아지는 손이 많이 가 도저히 자신이 없어, 목욕 안 시켜도 되고 화장실 가릴 줄 아는 습성이 있는 토끼를 선택했던 것이다.
냄새나는 토끼를 어찌 기를까 고민했었지만 부지런히 화장실 청소 해주고 날리는 털 수시로 청소기로 흡입하니 그런대로 공생할 만했고
그보다는 토끼에게 얻는 딸의 정서적 안정이 훨씬 더 컸으니 이 토끼는 우리에게 흡사 은인 수준이다.
제 자식이라 말할 만큼 사랑하는 토끼를 혼자 두고 유학을 떠난 둘쨰딸이 또 한 번의 출국을 앞두고 있다.
마지막 날까지도 오로지 토끼걱정 뿐이다.
마음이야 뭐 그러겠냐만은 '엄마아빠도 걱정 좀 해 주지 그러냐'고 장난삼아 반박을 해 봐도 우리 딸은 끝내 요지부동이다.
그렇게도 토끼가 좋을까.ㅋㅋ
그나저나 우리집 둘째딸 아쉬워서 어쩌나.
둘째딸이 미국으로 떠나는 날이다.
무거운 가방 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울 녀석.
일단 큰딸과 함께 농담섞은 큰 목소리로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쓸쓸하거나 부담되는 마음이 들지 않게 한다.
또 울면 안 되니까.
큰딸이 유학 갈 당시에도 난 울었고 돌아오는 첫 해에도 울었는데 작년 여름 작은딸을 보내면서도 역시 엉엉 통곡을 했고
아이 돌아오는 첫 방학에도 또 엉엉 울었다.
하지만 이제 처음도 아니고...
웃으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야지 이를 악물었으니 꼭 그렇게 하리라.
다행히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함께 가는 첫 유학길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딸아이가 정신없어 하는 바람에 성공하긴 했지만 어쨌든 마음이 다소 낫다.
한 달 뒤, 큰딸 마저 독일로 떠나면 또 적막한 일 년이 기다릴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작은딸의 빈자리를 한 달여 만이라도 큰딸이 채우니 말이다.
먹는 걸 좋아하는 둘째 녀셕 때문에 정말 원없이 먹으러 다녔고 원없이 요리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 요리 잘 하는 척 하느라 인터넷 검색도 수시로 했고 불 앞에서 땀도 무지 많이 흘렸고...
내 할 일 하랴 밥 하랴 진짜 진짜 바삐 산 여름이었으니 올 여름은 내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엄마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아이들이 커가면서 오히려 더 느낀다.
멋지게 잘할 수 있겠지?
각자의 삶에서 나도 남편도 아이들도 그리고 우리 토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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