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하늘이 시커멓고 강풍이 불면서 여름폭우 마냥 많은 비가 내렸었는데
날이 밝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나고 날씨가 청명하다.
일주일 전부터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하늘이 도우셨다.
오늘은 남편이 대표로 있는 베스트 스트링챔버 오케스트라의 바깥 나들이가 있는 날이다.
늘 있어오던 연습 날짜, 연습 시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장소만 옮겨 모임을 갖는다.
선생님과 제자 사이이다 보니 아무리 가깝다고는 하나 제자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마냥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바람부는 야외로 나가 각자의 악기 대신 젓가락을 들고 고기 구워 먹고 담소도 나누며 서로 가까워지자는 의도를 시도했다.
그러려면 우리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캠핑장비 사용과 몇 사람의 노동기부는 필수다.
제자 둘에게 일 도울 것을 부탁하니 기꺼이 수락한다.
늘 한결같이 고마운 아이들이다.
아침 일찍 연습 스케줄 하나를 마치고 남편과 둘이서 점심식사를 가볍게 했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짐을 꾸린다.
급하다 급해 하면서.
쌀, 김치, 바베큐 용 고기, 고기 안 좋아하는 제자를 위해 밤에 만든 밑반찬, 다음 날 우리 먹을 떡국 재료 등등.
아무리 잘 챙긴다 해도 하나쯤 빠지는 게 있는 나의 짐가방이지만
늘 그렇듯 다른 때와는 달리 이번엔 잘 챙겼겠지 자신하며 집을 나선다.
미리 예약해 둔 고산 야영장에 도착했다.
두 제자는 장을 봐 좀 더 나중에 도착한다 했으니 우리끼리 먼저 일을 시작해야 한다.
서둘러 출발한 덕에 시간은 넉넉한 듯 하나 일이란 해봐야 하는 것.
'침착하게'를 마음으로 되뇌이며 각자의 할 일을 한다.
고픈 배로 도착할 단원들에게 제 시간에 밥을 주려면 시간에 오차가 없어야 하니 말이다.
바람이 많고 햇빛이 강하다.
타프를 치려는데 어찌나 바람이 세던지 타프 한 끝을 잡고 있는 내 팔에 엄청난 힘이 들어간다.
헥사타프는 바람에 강하니 이 바람에도 잘 견디겠지 확신하며 요령껏 타프를 치고 그 아래에 테이블을 셋팅했다.
그런대로 그림이 괜찮다.
오랜만에 햇빛을 본 장비들이 햇살 아래에서 주름펴고 웃는다.
고산 오토캠핑장 23번 사이트 옆에는 이런 정자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앉을 자리가 없으면 이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을 요량으로 이 옆에 둥지를 틀고
어두워질 밤을 대비해 천장 대들보에 120발 led등까지 매단다.
둘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부산스럽게 준비를 했다.
그러노라니 일 도와 줄 두 제자가 도착한다.
제자들이 사 온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돌리고 또 각자 일을 시작한다.
남편은 바베큐 통에 고기를 얹고 제자들은 쌈채소를 씻기 위해 수돗가로 간다.
고산 오토캠핑장은 오늘로 두 번째다.
그런데 이 개수대는 처음 사용한다.
우리 사이트의 수도시설을 이용해 캠핑카에 직수를 연결, 편하게 마음껏 물을 쓸 수 있었기에 개수대에 올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정말 감탄할 만 하다.
물이 시원하게 잘 나온다.
거기에다 배수까지 마음에 든다.
이 망으로 어찌나 물이 잘 나가는지 지금까지 여러 캠핑장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깔끔하고 잘된 시설은 처음 본다.
뒤이어 도착한 두 남자가 장작과 씨름을 한다.
주변에서 주워 온 나무를 자르는데 가만보니 그 자체가 코메디다.
어색한 톱질, 엉뚱한 행동, 유머러스한 말...
내가 파안대소한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밤이 되니 캠핑장에 추위가 찾아온다.
모닥불이 우리를 한곳으로 모은다.
예전에 텐트캠핑을 할 땐 모닥불대가 필수였고 캠핑을 가면 당연히 불을 지폈다.
그 위에 삼각대를 설치 해 더치오븐을 걸어 빵 굽고 전도 부쳐 먹고.
그야말로 모닥불대는 우리에게 추억 제조기였다.
그러던 우리가 트레일러를 사용하게 되면서 점점 불편한 것들을 멀리하다 보니 모닥불대는 남에게 팔려나갔고
그 후 우린 아주 조그마한 미니 모닥불대를 하나 구입해 그나마 아주 간혹 어쩌다 한 번 사용한다.
그런 모닥불대가 오늘 제대로 사용되고 있다.
5시가 넘자 단원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모인 단원들 대부분이 밤공기가 차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왔다.
얇은 옷에 미니스커트 심지어는 여름 해변가에서나 신을 법한 슬리퍼를 신은 아이도 있다.
엄마의 심정이 되어 마음이 안타까워진다.
트레일러 안에 있던 우리 옷과 담요를 있는 대로 다 꺼내어 입히고도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활활 타는 이 모닥불의 온기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는지.
향기좋은 바베큐가 완성되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은 단원들이 이곳 저곳에 삼삼오오 모여 깔깔 웃으며 담소를 나눈다.
살아가는 이야기가 나오고 유익한 이야기도 나오고...
캠핑카 구경도 한다.
이번 야유회에는 본인 뿐 아니라 함께 오고 싶은 가족까지 초대했다.
신혼의 남편과 함께 온 단원도 있고 아이 둘을 포함 가족 전체가 온 단원도 있다.
참 좋을 때다.
내 신혼시절이 생각나면서 저들의 아름다운 삶을 조용히 기원해 본다.
시간이 흐른다.
많이 먹고 재미있게 잘 놀았다.
남은 음식재료를 봉지봉지 싸 단원들에게 나눠준다.
값으로 따지면야 그깟 게 얼마나 되겠냐만 그저 마음이 오가는 행위다.
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라면 무엇이든 잘 퍼준다.
내가 줄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내가 주는 그 무엇인가를 고맙게 받아주는 마음이 고마워 어디서든 난 그렇게 한다.
그런 내가 요즘엔 그와 같은 마음을 약간은 자제한다.
언젠가 션 부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기부 자주 하는 부부이다 보니 기부를 당연하게 여겨 돈이 생기면 당연히 기부할 걸로 알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부담스러운 시선이 돌아온다고.
그래서 집에 외제차 몇 대 있는 것도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고 큰 집에 사는 것도 사람들은 이상하게 본단다.
'그렇구나.'
그렇게 그땐 그럴수도 있겠다 동조만 했다.
그런데 남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도 그런 심경이 될 때가 종종 있으니까.
친할수록 서로 예를 갖추고 잘 아는 사람에게 더더욱 깊은 사랑과 관심을 표현해야 한다.
시간이 깊어지고 단원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우리 사이트가 갑자기 고요하다.
남편이 장비 정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하잖다.
내가 아니다 했다.
지금도 몸이 뻐근한데 내일 일어나 하는 건 더 무리일 것이고
게다가 1시부터 해야 할 일정이 있어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몸 아픈 상태에서 아침의 노동은 내가 하고 싶지 않았다.
손님 치르는 날이면 언제나 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에 먹고 있는 손님들을 주시하게 되고 그나마 내가 먹는 음식도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는다.
오늘도 여전히 그랬다.
뭘 먹었는지 배도 안 부르고 맛도 기억이 안 난다.
장비정리를 다 마치니 이미 새벽시간이건만 심한 시장기가 돌면서 매콤하게 끓여진 꼬들꼬들한 라면이 생각난다.
'밤 늦은 시간에 먹는 라면이라...'
고민하고 참고 몇 번을 그렇게 하다가 보름달로 변할 내 아침 얼굴을 각오하고
난 결국 라면 몇 줄기를 맛나게 먹었다.
날이 밝았다.
밖을 바라 본 남편이 말한다.
어제 그 시끄럽고 화려하던 장면이 싹 없어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다고.
"이제 아르떼 연주 끝날 때까지는 몸 관리 해야 하니 캠핑 못 가겠지?"
아쉽다.
아쉽다는 건 아직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눴다.
단원들과 한 발 가까워질 수 있었던 유익하고 즐거운 하루였다.
몸은 힘드나 마음이 너무나 가볍다.
자동차가 달린다.
바람을 가르고 가로수가 뒤로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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