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유학 중인 현주가 7월 말에 왔다.
원래는 한 달여 늦게 올 생각이었는데 동생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거라 했더니 가기 전 얼굴은 꼭 봐야한다며
스케줄 하나 취소하고 달려온 것이다.
그러느라 음악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사 둔 비행기표 하나를 고스란히 날렸는데도 그저 함박웃음인 걸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가족이 그리웠겠는가 미루어 짐작한다.
현주가 비행기에서 내려 집에 도착하던 날
일을 다 마친 우리는 큰딸 현주와 둘째딸 현민이를 데리고 바로 장수 방화동 캠핑장으로 갔었다.
외국생활하다 온 아이를 정작 그리운 집에서는 하루도 재우지 않고 말이다.
정말 못말리는 부모 아닌가.ㅎㅎㅎ
한참 여름휴가가 피크이던 때라 텐트와 텐트 사이에 프라이버시를 위한 거리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의 텐트 바로 앞에서 이야기하고 밥 먹고...
휴가철 극 성수기인데다가 오랜만의 가족 상봉, 친구 모임등 나름대로 즐겨야 할 이유들은 다들 갖고 있는지라
다른 때처럼 조용해달라 기원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일 년이면 겨우 몇 번 하는 친정식구 가족모임을 방화동에서 하느라 다른 때와 달리 목소리가 커졌었으니까.
2박 예정이던 친정식구 모임이 끝나던 날 아침,
여느때처럼 타프아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자리를 찾아 헤메는 사람들이 벌써부터 눈에 들어왔다.
자리를 찾아 헤메던 남자 한 분이 용기를 내 우리에게 묻는다.
언제 나가시냐고.
지금은 아니지만 아직 자고 있는 아이들만 일어나면 내 것과 동생 것 두 텐트를 걷어줄 테니 기다렸다 그 자리를 쓰시라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일어나고,
텐트를 접기 전 방안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분주히 일하고 있는 내 귀에 동생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 온다.
맏이된 책임감으로 일하던 손을 멈추고 밖으로 나갔다.
사건은 이렇다.
동생이 텐트를 걷으려는 것을 본 앞집 남자가 어디선가 다가와 자신 타프의 펙을 빼
아직 채 걷지 않은 내 동생 텐트 바닥을 들춰 자신의 펙을 옮겨 박았고
한 마디 양해의 말 없던 그 남자의 용감한? 행동을 본 우리 가족들이 어처구니없어 항의하자 분위기가 묘해진 것이다.
'이런, 이러다 싸움 나겠군'
내가 한마디 한다.
"다들 설레는 마음으로 휴가를 왔는데 자리가 없어 보시다시피 난감해 한다.
이 와중에 작은 자리라도 먼저 빼주려고 텐트를 걷고 있는데 여기로 펙을 옮겨 박으면 이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다.
그러니 다시 원래의 자리로 옮기는 게 좋겠다.
참고로 난 이 사람들(우리 자리에 들어 오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전혀 모른다.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다."
그러자 그 남자가 대답한다.
"모르시나 본데 원래 헥사타프는 스트링을 멀리 박아야 하거든요."
졸지에 우린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 할 초보캠퍼가 되었다.
누가 모르나?
하지만 이 광경을 보라.
멀리 박았다가도 가까운 곳으로 옮겨주면서 '여기에 텐트치세요' 한다면...
자신의 지인들과 한 곳에 모여 우리 바로 옆에서 캠핑하던 저 하얀 타프의 주인.
-알고 보니 내가 아는 호남캠퍼들의 지인이기도 하다.
그 남자가 현재 자신의 텐트와 타프가 있던 자리로 들어오던 날이 생각난다.
우리 트레일러 출입문 바로 앞에서 텐트와 타프를 치고 휴가를 즐겼던 어떤 가족이 떠나는 날
자리찾아 헤메던 또다른 사람이 언제 나가느냐 묻다가 오늘 나간다 하니 그럼 우리가 이 자리로 들어오겠다 말하며
자리를 예약해 두고 갔었다.
그런데 밤 늦게 가겠다던 그 가족이 예상보다 일찍 떠나게 되었고 예약자의 연락처를 모른다며 어쩔줄을 몰라하는데
내 옆집의 일행이던 이 남자는
'에이 그냥 쳐'
라는 일행 중 누군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손에 든 망치로 펙을 힘차게 박아 타프 하나 달랑 설치해 두고 자신이 놀던 자리로
되돌아 갔었다.
예약하고 갔기에 마음 놓고 올 그 사람이 내심 걱정되긴 했지만 내 일이 아니니 참견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예약자가 오지 않거나 아님 왔다가도 남의 타프가 설치된 것을 보고 그냥 포기하고 돌아갈 정도로
착한사람 이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그 후 예약자가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나는 모르지만 다행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캠핑이 끝났다.
열심히 놀았으니 우리의 직업적 일 또한 열심히, 그리고 이번엔 대전으로 간다.
서울에서 대학교 졸업하고 비인으로 유학 다녀오고 또 귀국해 서울에서 일하며 살고...
그러다가 남편의 일 때문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전주로 아이들까지 데리고 이사를 했다.
비인이나 서울에서 시간이 날 때면 이케아, 코스트코 등 초 대형마트에 종종 다녔는데 전주로 오니 없어서 못간다.
대형마트가 뭐라고 코스트코를 가기 위해 대전으로 가는 건지...^^
오랜만에 접하는 창고형 매장이 정겹다.
치즈 몇 개, 빵 한꾸러미, 진공포장기계, 마사지팩등 별로 산 것도 없으면서 신나게 매장 돌아다니며 깔깔대다가
낙지볶음 사먹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며칠 후 새만금으로.
공사 마무리 전에는 드라이브 삼아 종종 갔었는데 완전히 개통된 후로는 처음이다.
마냥 달려도 끝이 안 날 만큼 긴 방조제를 달리다 한 곳에 내려 끼룩대는 갈매기와 잔잔한 바다를 바라본다.
그런데 눈앞에서 수없이 많은 잠자리가 날아다닌다.
벌레라면 질색을 하는 현주가 징그럽다고 괴성을 지르니 옆에 있던 우리가 깜짝깜짝 놀란다.
현주에게 잠자리에 대한 친근감도 길러줄 겸 검지 손가락을 세우면서 여기에 앉으라 하면 앉을 거라 말하고 자신있게 기다리는데
우리 말도 모르고 우리 마음도 모르는 바보같은 잠자리가 전혀 대꾸하지 않는다.
그바람에 또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돌아오는 길에 영상테마파크에 들렀다.
우리는 운동삼아 걸을 겸 들어가고 현민이는 말 본다는 기대를 안고 들어간다.
중3인 현민이는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고 매우 논리적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성공하면 동물을 위한 보호재단을 설립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현민이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하이디라는 외국인이 동물과 교감하는 장면을 텔레비젼을 통해 보고 현민이가 그녀에게 이메일 편지를 썼단다.
나는 전혀 몰랐던 일이다.
그 장면이 얼마나 감동적이었으면 어린 아이가 외국인에게 영어로 편지를 썼겠는가.
참 대단한 아이다.
테마파크를 한 바퀴 빙 돌아 나오는 길, 또 말 있는 곳을 바라보는 현민이에게 가서 한 번 더 보고 오라 하니
뒤도 안 돌아보고 머리카락 날리며 달려간다.
미국 유학을 약 2주 앞두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현민이는 이렇게 말한다.
"토끼 보고 싶어서 어떡하지?"
엄마아빠 보고 싶어 어떡하냐는 말은 한 마디도 안하면서 남겨둘 토끼만 걱정한다.
어차피 토끼는 내가 키우는데.
똥오줌도 내가 치우고 먹이도 내가 사고. ^^
두 아이는 일곱 살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전혀 나이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는 하나로 충분하다 생각했던 우리가 동생을 갖고 싶다는 큰아이의 말에 동의했던 게 현재 우리의 행복이 되었다.
십자 모양의 형틀은 아는데 저 의자는 뭐냐 묻는 현민이.
앉아 보라 했다.
앉으면 시범을 보이겠노라고.
이래서 우리는 또 한 번 크게 웃었다.ㅍㅎㅎㅎ
아이들과의 나들이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내일은 또 어디로 갈까?
뭐하고 놀까?
뭐 먹을까?
...
네 사람의 여름휴가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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