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코앞에 와있나 보다.
전국적으로 내릴 봄비가 예보되어 있다.
캠핑을 하면서 비에 대해 느낀 게 있다.
이건 순전히 나의 경험이긴 하지만
비를 무서워하고 피하면 캠핑초보, 엄청난 폭우까지도 좋아하고 기다린다면 중증캠퍼, 비가 귀찮다면 그 순간 캠핑권태기다.
그렇다면 난 그것마저도 넘은 안정기? ㅎㅎ
방화동의 얼음이 지난 주와 다르다.
살살 지나는 물소리가 한결 가깝고 그래서인지 나뭇가지에 걸린 햇살까지도 훨씬 부드럽게 느껴진다.
얕은 물길은 이미 봄의 차지다.
3월부터는 온 캠핑장의 시설들을 다 오픈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아직 폐쇄상태를 면치 못했다.
아무래도 인간보다는 계절의 깨달음이 먼저인가 보다.
'겨울이 다 갔으니 이젠 움츠리지 않아도 된다' 바람과 햇살이 말하고 있는데...
방화동 캠핑장의 문지기라도 되는 양 2주 째 입구를 지키고 있는 콤파스가 마른가지 너머로 제 형채를 드리운다.
캠핑이 조금 지겨워질 무렵 마침 우리 두 사람의 팔 관절이 아프기 시작했다.
할 것 다 해 본 우리에게 그것은 캠핑카 쇼핑의 적절하고 매우 타당한 이유가 되어 주었고
등산, 자전거 등 다른 종목과 병행하는 캠핑으로 들어서도 좋았을 것을 아직 게으른 우린 그저 편한 잠자리를 택해
냉큼 캠핑 트레일러를 샀다.
차를 타고 주변 어딘가를 자주 드나드는 우리의 성향상
동력 일체형 캠핑카보다는 따로따로 움직일 수 있는 무동력 캠핑카가 낫다 생각해서다.
그렇게 해서 만난 게 미국 캠핑트레일러 '콤파스'다.
비에 젖은 방화동 캠핑장이 촉촉하다.
찬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데도 바깥에 앉아 모닥불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 보인다.
일본 스노우피크 모양 일색이던 캠핑장의 텐트들이 코베아 등 국산으로 주를 이루고 그 크기도 점점 더 거대해졌다.
그러면서 따뜻한 텐트 내부에서 모든것을 해결하며 편히 지내는 게 가능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여기, 밤늦도록 모닥불을 피우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마을.
아마도 아는 사람들끼리 약속을 하고 한자리에 모였나 보다.
캠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닥불의 정취를 얼마 만큼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고스란히 기억할 것이다.
활활 타는 모닥불을 바라다 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잇다 보면 불춤과 함께 우리 마음도 너울너울 가벼워졌었는데
그 낭만충만한 놀이가 이제는 우리부부에게서 사라지려 한다.
몇 달 전 구입한 장작이 상자에 담긴 채 그대로 있는 걸 보면서 과연 이것이 여름 전에 태워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걸 보면
분명 그렇다.
우리 게으름의 산물이다.
캠핑장에서 다른 사람들은 물을 긷고 장작을 패고 뭔가를 마시고 먹고 떠들고 이야기 하며 손님을 맞이 하고...
언뜻 보기에도 하는 일이 참 많다.
그런데 우리는,
'오랜만에 숯불에 고기 구워 먹을까' 하다가도 '에이 이것 저것 치우려면 성가시니 그냥 안에서 팬에 굽자' 하고
'바깥 날씨 좋으니 나가서 모닥불 피우고 앉아 있을까' 하다가도 '에이 안이 더 따뜻한데 뭐하러 추운데서 고생해' 하며 안 나간다.
그도 그럴 것이 입 짧은 두 사람이 숯불 피워 고기 한 판 얹기가 무섭게 배부르다 할 텐데
매케한 연기 들이마시며 그 고생 할 필요 없고,
모닥불 피우고 맑은 공기 마시며 그림 같이 앉아 있고는 싶은데 그건 그림일 때 이야기지 자칫하면 청승이다.
결국 딸아이와 함께 다닐 땐 그러지 않았는데 우리 둘만 남으니 점점 더 간단모드로 행동하게 됨을 부인할 수 없다.ㅜㅜ
그러니 가끔 누군가와 함께 놀게 될 때면 그날은 아주 산뜻하고 꽉찬 하루가 된다.
저들도 그 재미를 아는 것이리라.
우리 둘 뿐인데다 트레일러 안에서 그야말로 없는 것 없이 편하게 지내다 보니 특별히 부지런 떨 이유가 없다.
새벽 5시에 잠자리에 들고 허리 아프도록 달게 자고나니 으악 아침 10시다.
뭔가 먹어야겠기에 남은 찬밥 한 그릇으로 누룽지 끓일 준비를 한다.
두 사람의 먹거리라 밥은 물론이고 아무리 작은 그릇에 요리를 해도 한 끼에 다 먹질 못한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지, 그렇다면 머릿수는 밥맛 아닐까?
그리고 그 사이에라도 혹여 더 잘 마음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더 자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커튼으로 햇빛을 차단해 준다.
지난 주 만난 지인이 맛있게 먹던 주물럭을 또 했다.
별 것 아닌 음식에 감탄하던 지인의 들뜬 목소리가 자동으로 내 손을 움직였나 보다.
그런데 이번엔 거기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이 계절 장수 방화동에 가면 산에서 고로쇠를 채취해 돌아오는 경운기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
그 소리를 따라 나간 남편이 결국 신선한 진품 고로쇠를 산다.
내 관절이 안 좋다는 이유로 해마다 시행되는 커다란 통속에 담긴 맹물 먹는 고역이 또 시작된 것이다.
마시고 또 마시고 화장실 가고....
그것도 모자라 집으로 들고 와 또 마신다.
처음엔 하얗고 달적지근한 물을 우웩거기며 억지로 마셨는데 이젠 이것도 습관이 되어 꿀꺽꿀꺽 잘 먹는다.
이 돈으로 관절약을 사먹는 게 나은지 아님 고로쇠를 먹는 게 나은지 물으니
남편이 아무 대답을 못한다.
물론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대답에 담지 못한 남편의 마음을 나는 안다.
제 자리에서 묵묵히 가족을 지켜보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남편을 강산이 몇 번 바뀌는 세월동안 보아왔으니
난 그저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웃어주면 된다.
그게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또 한 번의 캠핑이 가슴에 쌓인다.
이렇게 쌓인 추억과 우리의 노력으로 만든 우리만의 건강한 울타리는 내 두 딸이 바르게 성장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근간,
소중한 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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