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살고 있는 큰딸이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한국에 왔다.
잠깐이라 할 수 있는 3주간의 방문이지만 1년 반 만의 방문이라 할 일도 해야할 일도 많다.
한국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연말 일정으로 잡힌 내 연주 중 오케스트라 송년음악회에 엑스트라 단원으로 참여하게 했다.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협연으로 열린 음악회인데
바이올린 파트 맨뒤에 딸을 앉히고 연주 페이도 없이 그냥 '경험'이라는 공부를 하게 했다.
첼로파트 맨앞 내 자리에 앉아 고개를 들면 건너편 맨끝에 앉아 있는 내 딸의 모습이 보인다.
시차적응이 안 된 상태인데다가 예고 졸업 후 처음하는 오케스트라 연주에 아이가 넋이 나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 배움의 길이 멀다 느낄 만큼 많이 서툴다.^^
예고 학생들은 학교 일정에 오케스트라 연주가 포함되어 매 해마다 오케스트라 연주 발표를 한다.
그러나 프로 오케스트라처럼 몇 번 연습하고 바로 연주하는 게 아니라
아주 오랜 기간동안 같은 곡을 연습시켜 연주를 하니 아이들이 악보를 거의 외우는 상황이 된다.
그런 연주만 하던 아이가 프로 오케스트라에서, 그것도 제 1바이올린을 연주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그래도 이번의 경험이 딸에게는 사고의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연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앞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는 절대 하지 않겠노라 으름장을 놓는다.
이번 경험이 얼마나 힘들고 당황스러웠으면...
아무래도 당분간은 딸아이가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 것 같다.^^
지난 여름에 독일 언니집에 다녀왔으면서도 언니가 그렇게 좋은가 보다.
감기로 인해 머리 아프고 목구멍 아프다 어리광부리다가도 언니만 보면 싱긋 웃는다.
이 사춘기 소녀에게 최고의 약이 언니라니.....^^
큰딸이 오고 부터 우리 가족은 거의 매일 외식을 한다.
먹고 싶은 걸 말하라 했더니 줄줄 나온다.^^
떡갈비.
양푼 동태찌개.
탕수육....
사진에는 없지만 그 후로도 얼마나 많은 다양한 음식을 먹으러 다녔는지 모른다.
독일에 있는 딸의 친구가 한국에 다녀오더니 하는 말.
엄마가 '다시는 오지 말라' 하더란다.
오면 이것저것 사고 먹이고 뒷바라지 하느라 돈도 많이 들어가고 정신이 없다고...^^
그럴만 하다.
나도 우리 딸이 온 후로 악보작업이라곤 전혀 못 하고 꼭 필요한 업무만 하고 있으니.
하지만 그래도 난 딸이 오는 게 좋다.
그래서 언제라도 좋으니 짧은 일정으로라도 와서 맛있는 거 먹고 필요한 거 사가라고 했더니
오히려 딸이 싫단다.
지금도 우리집은 내가 '이것 예쁘다 사줄까?' 하면 딸들이' 필요없다. 싫다' 하고
'이것 갖고 가라' 하면 '됐다. 엄마 쓰라' 한다.
다른집은 딸이 '사달라' 하면 엄마가 '당장 필요한 게 아니니 다음에 사라'던데...
엄마가 철이 없는 건지 아이들이 철이 든 건지 모르겠다.
최근 우리 딸들의 소일거리 중 또하나.
얼마전에 새식구가 된 토끼를 밖에 꺼내놓고 아예 노골적으로 논다.
바닥에 건초를 흩뿌려두고 방의 일부를 토끼의 놀이터로 만들고는 좋다 박수를 친다.
좀 더 있으면 토끼를 위해 방바닥에 잔디를 심을지도 모르겠다.^^
맘대로 돌아다니며 건초도 먹고 똥도 싸고 오줌도 싸고...
아주 토끼판이다.
토끼에게 물과 먹이를 주고 바닥에 까는 건초더미를 갈아주는 일은 늘 둘째딸이 한다.
그러기로 약속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 하는 걸 보니 책임감 강한 모습에 오히려 짠하다.
그래서인지 토끼들은 둘째딸의 손길을 전혀 거부하지 않는다.
먹이통을 꺼내면 후다닥 뛰어와 매달려 끈질기게 야금야금 먹는다.
내 눈에도 여간 귀여운 게 아닌데 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피는 우리 딸의 눈에는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겠는가.
딸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3주 예정으로 온 큰딸의 돌아갈 날이 머지 않았다.
필요한 거 있음 사라고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나가서도 세 모녀는 깔깔거린다.
남 보기 창피하다는 사춘기 둘째딸의 지적이 아니라면 더 깔깔거릴텐데 그 지적으로 인해 많이 참는다.^^
난 남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춘기 우리 둘째딸은 남들이 보고 들으면 어쩔려고 그러냐며 가만히 있으라 늘 지적이다.
얻어 먹는 것도 하지 말라고 하고 지나가는 아이에게 예쁘다 칭찬하는 것도 창피하다 하고
난 그런 딸의 모습이 귀여워 더 하고...ㅎㅎ
그러다 엄마 따라다니며 잔소리하는 게 지친 건지 다리가 아픈 건지 판매용 의자에 앉는다.
그래도 언니 필요한 거 있으면 사야 하니 잘 참는다.
나는 큰딸의 화장한 모습을 이번에 처음으로 봤다.
늘 청순한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다니더니 이번에는 왠일인지 화장을 제대로 하고 왔다.
하긴 벌써 스물한 살 어엿한 성인인데...
그런데 내가 사 준 게 아니라 본인이 독일에서 직접 골라 사용하다 보니 외국사람의 피부톤에 맞는
붉은 빛 도는 파운데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색깔이 맞지 않아 피부표현이 잘 안 된다.
화장품 코너에 가 동양인의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선택해 사줬다.
면세점에서 사면 되는데 뭐하러 여기에서 비싼값에 사냐며 손사래를 치는 딸에게 쓰다가 두고 가면
내가 마저 쓰면 된다 우겼다.
하여튼 알뜰한 딸이다.^^
자신이 결혼하면 '엄마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우리 큰딸.
우리의 유학생활과 귀국 후 첫 생활을 함께 하느라 고생을 좀 해 늘 미안한 마음인데 그런 딸이 벌써 성인이 되어
오히려 우리의 건강과 안위를 염려하고 눈물을 흘린다.
고맙고 든든하다.
여느집 큰딸도 그렇겠지만 역시 우리살림의 대들보다.
또하나의 대들보.
늘 붙어서 호호대는 우리를 흐뭇한 마음으로 뒤에서 바라보는 남편의 말없는 시선.
그 보호가 있기에 우리 세 모녀가 웃을 수 있음을 안다.
가족의 가치는 바로 그런 거 아닐까?
서로 위하고 보듬어 주는...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 가족...
지금까지처럼 올해도 가족 모두 건강하고 가슴 한가득 행복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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