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교향악단의 2019년 송년음악회.
이 연주를 위한 연습은 총 여섯 번.
그중 다섯 번째 연습 날의 일이다.
"다음 연습은 객원 연주자까지 모두 모이는 총연습이라 그때를 피해 우리 단원들만 모인 이 자리를 빌려 말한다"며 연습을 일찍 마친 시점에 무거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상임지휘자.
요지는 이렇다.
정읍시 교향악단, 페스티벌 심포니 오케스트라, 전북교향악단에 이어 현재의 익산시 교향악단으로.
지휘자며 연주자 등 동일한 사람이 많아 혹자는 그저 명칭만 바뀐 걸로 알겠지만- 사실 단원들도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사실은 익산시와의 협약으로 익산시 교향악단이라는 단체가 출범을 했고 그렇게 지금까지 시립의 역할을 수행해 왔단다.
-그렇다면 익산시교향악단의 창단이 2009년이니 벌써 만 십 년.
참 세월 많이도 흘렀다.-
익산에 시립교향악단을 만드는 게 꿈이었던 지휘자.
그간 그에 걸맞는 노력을 했고 그 결과가 목전인 지금, 시립의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자신은 이 교향악단 그리고 단원들과 작별인사를 하노라는,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내용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시립이 되면 새로운 시스템으로 교향악단이 운영될 테니 작별이고 그렇지 않게 되더라도 이 상태의 운영은 그만이라는...
-그도 그럴 것이 그간 노력해 온 시간과 노력은 내가 지켜봐서 안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지칠 만하다ㅜㅜ-
단원들의 얼굴을 훑는다.
놀라움, 절망 그리고 무표정...
내가 전주로 이사오던 해 그러니까 내 나이 사십에 시작해 지금 오십 여섯.
이 지휘자와 함께 한 세월이 나의 경우 자그마치 만 17년이다.
시작 당시 이미 이 오케스트라에 단원으로 재직 중이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때부터 쭉 함께 한 단원들은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나이를 먹어온 것.
재정상태가 어려운 게 민간교향악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착한 우리 단원들.
임금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약속과 달리 연주비가 덜 들어온 경우에도 군소리 한 번 안 했다.
좋아하는 이와 함께 연습하고 연주함에 그저 감사하고
이곳을 직장이라 여겨 본인 음악인으로서의 삶 마지막까지 이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
이곳 스케줄에 올인하느라 다른 단체의 연주를 자꾸 거절하다 보니 타 단체에서의 일감은 이제 아예 안 들어온다는 이도 많던데.
악장은 알고 있었겠지?
꼭 오늘이어야 했나?
완전한 결정이 난 후 짜장면이라도 사주면서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했으면 더 좋으련만...
이전에도 공식적인 해단식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모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되면 어쩌지?
상처 받는 단원이 없어야 할 텐데 이 일을 어쩌나...
찰나의 순간, 내 머릿속 수많은 생각이 서로 뒤엉킨다.
어쨌든 그러한 이유로 이번 연주는 익산시 교향악단에겐 고별 연주회가 되고 말았다.
리허설.
하나 둘 단원들이 들어선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바이올린 파트.
리허설 막바지에 도착한 한 사람을 제외하면 첼로파트도 모두 자리를 채웠다.
우리는 프로연주자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연습과 연주는 최선을 다 해 임하는 게 본연의 임무.
최선을 다해 잘 하자구요~~^^
새삼 생각난다.
이 연주를 준비하는 사이 나에게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고.
목디스크로 인한 어깨와 팔의 부상이 견딜만한 통증으로 자리 잡을 무렵, 복용 중이던 약 탓이었을까?
가위질을 하다 그만 내 손바닥을 싹둑.
하필 지금...
이 손으로 어떻게 연습을 하냐며 오늘만이라도 쉬라는 남편에게 내가 한 말.
"내 뒤의 단원들이 배워. 그리고 난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때 내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진심으로 남들에게, 특히 지휘자에게 미안해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결국 그날,
다친 첫날 바로 왔어야 한다는 의사의 호통을 들으며 상처를 봉합했다.
뭐든 시간이 흐르면 좋아지고 낫는다.
꼬박 일주일이 지난 시점, 그러니까 연주 하루 전.
봉합실을 풀었다.
사실 손을 다친 후, 칼도 무섭고 가위도 무섭고 또 다칠까 봐 주방까지 멀리하고 밥맛까지 잃어가며
불안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신경까지 손상되지는 않았기에 손의 움직임은 지장이 없으나 아직 스치거나 부딪치면 아프니 거즈를 대면될 정도의 회복.
정말 다행이지 뭔가.
이대로 속살의 통증까지 가신다면... 완벽^^-
.
.
.
합창, 비올라 협연, 발레곡...
연주가 끝났다.
직장이 공중분해되어 졸지에 예고도 없이 갑자기 잘린 느낌이다.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울었다...
그동안 들었던 여러 가지 말들이 단원들 얼굴에 오버랩되며 가시같이 목에 걸린다.
토닥토닥...
모두 힘내요~~
사람 일은 모르는 법,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뒷이야기>
이곳 아프고 저곳 아프고...
한 달여의 기간이었다.
이제는 모든 아픔이 안정궤도에 올라 웃을 수 있지만 내 삶 근래 들어 없던 불행한 일들이 '건강'이라는 코드로 줄지어 일어나니 나중엔 악재 액땜... 뭐 이런 단어까지 생각 날 지경이었다.
예수쟁이가 별소릴.^^
그러나 웃을 수만은 없는 기억들.
손바닥 봉합 소식을 들은 어떤 이가 한 말.
"집에 좋은 재봉틀이...."
"연주하기 싫은 모양이네"
재봉틀?
설마 봉합?
미워하는 사람에게 조차 안 할 독설을.
그리고 프로의식으로 똘똘 뭉친 내가 아무렴 연주하기 싫어 스스로 가위로 손바닥을 잘랐겠어?
어떻게 어린 단원들 앞에서 그런 말을...
그 후 자주 악몽을 꿨다.
믿는 이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소중한 캠핑카를 팔아서라도 오천 만원까지는 뒤를 대주겠노라 남편과 상의도 없이 당당하게 말하던 의리의 아이콘인 내가,
믿었던 이에게 뒤통수 되게 당하는 꿈.
열 개가 넘는 바늘이 동시에 움직이는 재봉틀로 내 다섯 손가락을 모두 다쳐 까만 봉합실을 수도 없이 묶는 끔찍한 꿈...ㅠㅠ
아무래도 나 또한 마음의 상처가 컸었나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는 나의 마인드 컨트롤 중 하나.
'이 또한 지나가리'
지금 난 나의 건강한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 내면을 훈련하는 중이다.
'잊자'
'비우자'
'내려놓자'
그리고 또 하나,
"웃자~~~^^"
함께 연주 활동해 온 내 오케스트라 동료들,
그동안 감사했구요...
어딜 가서도 좋아하는 음악 맘껏 하는 진정한 음악가의 삶을 누리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시립의 소망 또한 이루시길...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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