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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들 큰 테두리의 가족

그 외.../자유로운 이야기

by 오스빈 2013. 10. 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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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때.

열심히 시댁을 향해 차를 달리고 거의 다 갈 무렵 한 통의 전화를 받았었다.

작은 형님 가족은 친정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가고 작은 시누이 또한 명절 당일 아침 내 시부모님을 모시고 여행 갈 계획이라고.

그러느라 아주버님의 출근으로 인해 어차피 못 갈 형편이었던 큰형님이 차례상을 당신 집에서 차리기로 했으니

시댁에 가도 아무도 없을 거라며 놀라지 말란다. 

미리 연락한다는 게 일하느라 잊었노라면서.

운전하던 남편의 발에서 갑자기 힘이 빠지더니 차 속력이 슬슬슬 늦춰지고

뒷 좌석에 앉아 있던 큰딸과 나 역시 실망의 빛을 감출 수 없었다.

유학 간 아이 입장에서는 오랜만의 명절을 지내고자 큰맘 먹고 돌아가는 기간을 최대한 늦췄으니 그럴 밖에.

제 마음 속으로는 다소 힘들기는 하겠지만 함께 뺑 둘러앉아 송편도 빚고 고소한 기름 냄새 솔솔 나게 전도 부치는

나름대로 도란도란 다정한 가족들 모임을 생각했을 터다.

 

이번이 연휴가 길긴 했다.

여행 갈 계획을 굳이 갖지 않았던 사람들이라 해도 이번의 긴 연휴를 그냥 보내기엔 아까울 만 했으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미리 이야기를 해줘서 우리도 이런 기회에 여행이라도 길게 갈 수 있게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 지...

정말 아쉬웠다.

사실 우리 또한 이런 긴 연휴기간을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지 않는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명절연휴 이용해 여행가도 되는 거였어?"

"..."

바깥바람 쐬겠다는 의지 하나로 짧은 시간이나마 놓치지 않으려 힘든 캠핑도 마다 않던 우리가 순간 바보스러워졌다.

 

조용히 시간이 또 흘러 몇 주 후.

큰형님의 문자가 도착했다.

시아버님의 생신모임을 밭일도 함께 할 겸 부모님의 밭에서 갖자고 한다.

회비 십만 원 지참 아침 아홉 시까지 모여 두 시간 고구마를 캐고 나가서 식사를 하자고.

고구마 캐기라...

팔을 아껴야 할 우리에게 그런 일은 좀 꺼려야 할 일 중 하나다.

우리는 직업 상 골프도 테니스도 야구도 안 되고 그저 달리기, 수영 정도를 최고의 운동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가족들의 일이니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신속하게 오케이 답장을 보내고 스케줄 조정을 했다.

 

밭을 향해 간다.

우리가 약간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큰형님 내외를 제외하면 우리가 일등이다.

작은형님 네는 어디 갔다 오느라고 늦게 도착한다 했고 작은 시누이는 지인들과의 여행에 갔단다.

--이 또한 도착해서 안 일이다.--

약 500평 쯤 되나?

내가 보기엔 꽤 넓은 땅이다.

시부모님의 집은 광주, 밭은 담양.

오가면서 일 하느라 무척 힘들 텐데도 해마다 밭을 지키는 시어머니다.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작물에서 시어머니의 정갈한 성격이 느껴진다.

 

 

 

큰형님 내외는 전날부터 밭에 계셨단다.

두 시간 내에 고구마를 캔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그랬다는데.

큰형 노릇이란 게 참 힘들다는 걸 난 그분들을 통해 자주 느낀다.

--나 또한 집안의 맏이건만 이분들에 비하면 난 철부지다.

동생들 아무도 내 뜻에 반대되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늘 "언니야" "누나야" 하면서 잘 따르고 시끌벅적 와르르 웃기 일쑤라

그리 맏이로서의 스트레스나 책임감은 느낄 일이 거의 없으니까.--

그래서 난 웬만하면 큰형님에게 뭐든 "네~"하면서 웃는 얼굴로 대답하고 따른다.

우리가 잘 따라줘도 어려울 자리인 게 맏형의 자리고 맏며느리의 자리이니 그 또한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엔 그러질 못했다.

큰형님 내외와 시부모님께 두고두고 미안할 일이지만 여러가지 사건들이 마음에 쌓여 웃음이 잘 안 나왔다.

ㅜㅜ

--사실 어떠한 일도 개인의 사정을 듣고 나면 이해 못할 일은 없다.

전후사정이야 어쨌든 결국 모든 것은 속 좁은 나의 탓이지만

밭으로 가던 중 남편과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결국 언쟁을 해 서로 심기가 많이 불편했었다. --

 

 

 

고구마를 캐는 일도 힘들지만 그보다 더 힘든 일은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는 일이란다.

한 번도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상상해 보니 그렇겠다 인정이 된다.

미리 걷어 낸 고구마 줄기 덕에 그나마 쉽게 고구마를 캤고 뒤이어 도착한 작은형님 가족의 수고로 들깨도 잘 털었다.

 

 

 

힘 센 남자들의 낫과 곡괭이질로 토란의 줄기와 뿌리? 알?도 잘 거뒀다.

뿌듯하다.ㅋㅋ

 

 

 

고구마 줄기의 부드러운 부분을 잎을 제거하고 모아보라는 큰형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렇잖아도 줄기로 만든 반찬들이 얼마나 맛있는 지 알기에 저것들 버리기 아깝다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기분좋게 일한다.

 

 

 

일하는 우리에게 큰형님이 새참을 마련해주셨다.

 

 

 

사실 새참 먹기 전 남편이 일하는 나에게 다가와 넌지시 이걸 건냈었다.

 

어디에서 따왔는지 탐스럽게 생긴 홍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아침도 안 먹었고...먹을까?'

그런데 안에 계시는 시아버지가 생각 나 못 먹겠는 거다.

"아버님 드려"

그다지 컨디션 좋지 않은 나를 위해 내민 남편이 마음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아버님이 눈에 밟혀 거절을 했다.

 

아버님은 치매를 앓고 계신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아이같은 언행의 아버님을 뵐 때면 마음 속 저편부터 참 짠하다.

아버님께 숟가락과 함께 홍시를 반으로 갈라 그릇에 담아 드렸더니 잘 드신다.

마지막 남은 것을 잘 못 드시길래 숟가락으로 떠서 마저 드렸더니 그 또한 잘 받아드셨다.

고칠 수도 없는 무섭고 치사한 병과 싸우는 가여운 분.

 

 

 

 

한 개 두 개 똑똑 끊어 언제 다 하나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 또한 이렇게 한 가득이 되었다.

역시 티끌도 모으면 태산이라니까.^^

 

 

 

밭 어디선가 자라던 호박도 수거되어 오고.

힘들긴 했지만 가을걷이를 조금이나마 도와드리고 오니 예전에는 이것들을 나몰라라 했던 게 생각 나 미안해진다.

해마다 얻어 먹기만 했지 함께 할 생각조차 못 했는데 겸사겸사 모이니 좋긴 하다.

 

어머니와 형님이 고구마와 채소들을 골고루 챙겨주신다.

--전라도 사투리로 '오지다'는 말이 있다.

뿌듯하다의 뜻을 갖는 말인데.

챙겨져서 트렁크에 잔뜩 실려있는 것들을 보니 진짜 오졌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그것들이 서울로 달려가고 있다.

물론 일부기긴 하지만, 친정엄마에게로 말이다.

완전 도둑이지?

시댁에서 얻어다 친정에 갖다 주는.ㅋㅋ

좋은 것은 이웃과 나눠야지~

 

 

 

드디어 밥 먹을 시간.

맛있기로 유명세를 탄 식당이라는데,

불참한 시누이가 미안하다며 밥값은 자기가 다 낼 테니 맛있게 먹으라고 장소까지 추천을 해줬다고 한다.

매너 짱이다.

 

 

 

아침도 안 먹고 새참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으니 꼭꼭 씹어 열심히 먹으리라 작정을 하고 식당으로 들어선다.

 

 

 

봄처럼 가을꽃이 피었다.

이건 국화지 아마.

 

 

 프릴이 아름다운 맨드라미.

 

 

 

일도 마쳤고 앉아 쉬면서 편하게 밥을 먹고 나니 이제야 나무도 보이고 꽃도 보인다.

연주를 일 주일 앞두고 몸을 혹사했으니 앞이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인사를 나누고 모두와 헤어졌다.

 

아무도 지난 추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말은 해야 하고 이왕 한다면 솔직한 게 좋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이야기가 나오다가 만, 그저 머리만 불쑥 내밀다 쏙 들어가버린, 말하고 싶지 않은 내용일까 봐 차마 못 물어 본, 

그래서 눈치껏 '아 그런가보다' 그렇게 안 내용만으로도 내 마음이 다소 풀리는데

직접 고민을 듣고 위로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지.

이런 답답한...

시부모님이 만든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를 버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곰곰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하루였다.

 

나와 남편 그리고 두 딸이 포함 된 우리가족.

우리 두 딸이 결혼하면 인원이 불어나게 될 큰 테두리의 또하나의 우리가족.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 갈 큰 테두리의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본다.

미래....

서로를 보듬고 격려하고 축하하는 왁자지껄한 가족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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