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우리에겐 이미 가족, 우리 <토끼>

그 외.../자유로운 이야기

by 오스빈 2012. 11. 18. 07:21

본문

우리 토끼.

이름도 <토끼>.

그래서 "토끼야~"하고 부르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돌린다.

지능 낮은 동물임에도 제 이름은 아는 모양이다.

 

2년 전 토끼가 우리집에 처음 왔던 날.

대형 마트에서 단돈 일만 오천원에 산 작은 아이가 꼬물꼬물 움직이면서 돌아다니는 게 어찌나 신기하고 귀엽던지.

마침 집에 꿀병 씻어둔 게 있어서 그 안에 사료를 잔뜩 넣은 후 뚜껑을 열어 냄새로 토끼를 자극시킬 수 있을까 실험을 해봤는데

작은 다리로 기어올라 어떻게든 그 안에 든 것을 먹겠다고 덤볐었다.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실 우리의< 토끼 기르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우리 둘째딸이 아주 어릴 때의 일이다.

산책길에 만난 어떤 아주머니가 두 마리의 토끼를 데리고 걷다가 토끼 예쁘다고 관심보이던 우리 딸에게 그 두 마리를 다 줬다.

하얗고 귀여운 토끼.

그런데 그런데...

보기엔 그림처럼 예쁜데 집에 들어 온 토끼가 똥을 싸고 오줌 싸고....

아직 토끼 집을 구입하기 전이었던 터라 난 그 토끼들을 빈 과일박스에 넣었다.

그래야 똥이나 오줌을 싸도 집이 더러워지지 않고 토끼들이 돌아다니는 찝찝한? 행동을 안 하니까.

그런데 누가 토끼 아니랄까 봐 그 높은 상자 벽을 폴짝 잘도 뛰어 넘는 것이다.

작은 것들이 뜀뛰기는 어찌 그리도 잘 하던지.

그리고는 또 집안을 쏘다니면서 지저분하게시리 똥 싸고...

무지했던 난 그 토끼들을 다시 집어 넣고 이번엔 아예 상자의 뚜껑까지 닫아버렸다.

우리 기준에서 토끼가 보고 싶을 때 뚜껑 열어 구경하고 다 보고 나면 다시 닫고...

다음 날.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보니 토끼들이 모두 죽어 있었고 난 슬퍼하는 어린 둘째딸만 달래고는 별다른 뒷감정없이 토끼들을 땅에 묻어 주었다.

정말 그랬다.

내가 토끼를 죽게 만들었다는 생각보다는 토끼가 약해서 죽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죽은 토끼가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똥 오줌 걱정에서 탈피한 걸 어찌보면 다행이라 여긴 것이다.

아, 부끄러워...

요즘 우리 토끼를 보면 난 그 때의 일이 가끔 생각난다.

그리고는 그때의 못된 나의 행동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두 마리의 토끼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그 기억이 너무 아파 난 우리집 토끼를 사고 나서 바로 인터넷 토끼카페에 가입을 했다.

토끼에 대해 알아야 케어를 잘 해줄 수 있을 테니까.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그러다 잊어버리면 또 들어가 글을 찾아 읽어보고...

그렇게 하다 보니 토끼가 행복할 만한 행동들을 하게 되었다.

거실 한켠에 자리한 우리 토끼의 집이다.

 

토끼는 제자리에서 몸을 비틀어 높이 뛰기도 하고 평지에서는 발이 안 보일 만큼 빠르게 뛰기도 한다.

그러니 새끼 때 사용하던 작은 집은 이제 안되겠고..

더 큰 집을 사줘야 토끼가 편할 거라는 생각에 그 후 큰 개를 위한 넓고 높은 케이지를 샀다.

그런데 그것 마저도 토끼가 성장하니 좁다고 느껴진다.

그러다 우연히 펜스에 생각이 미쳤다.

곧 실행.

조립식 펜스를 충분히 사서 밖에 데리고 나갔을 때도 쓰고 집에서도 사용하자 계획을 한다.

그렇다고 과거에 사용하던 집들을 버릴 수는 없는 일.

큰 개용 케이지에는 계단과 이층침대를 설치 해 토끼가 위 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하게 해주고 첫 집인 파란 플라스틱 집은 화장실로 사용.

그렇게 하기 위해 오줌묻은 휴지를 파란 집에 둬 배변을 그쪽으로 유도했다.

그리고 펜스로 큰 캐이지와 파란 집을 연결해 긴 거실 겸 운동장을 만들었더니

아주 멋진 토끼집이 완성되었다.

 

시간이 지나 토끼가 또 컸다.

이녀석 컸다고 점프력도 향상되었는지 어느날인가 결국 귀여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안방에서 가족끼리 이야기를 하며 쉬고 있는데 펜스집 안에 있어야 할 녀석이 안방 문 앞에서 우릴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 아닌가.

왠지 언젠가 그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하곤 했었는데 이게 사실이 될 줄이야.

한마디로 담을 뛰어 넘을 만큼 토끼가 성장했다는 것.

그말은 이제 지붕있는 집이 필요하단 이야기다.


펜스집 위로 역시 펜스를 얹어 지붕을 만들었다.

이어 붙이는 건 그동안 모아뒀던 빵봉지 묶는 철끈으로.

그 다음은 바닥.

이것도 처음에는 종이박스를 뜯어 그것을 재단을 해 바닥을 만들어 줬었는데 어찌나 앞발로 파 구멍을 내고 종이를 뜯어먹던지 다 내다 버렸고

그 후엔 장판을 구입해 미끄럽지 않은 뒷면이 위로 오게 해 바닥을 만들고 똥이 굴러 나오지 않도록 턱을 만들어 올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토끼는 아주 근사한 대저택을 갖게 되었고 우리는 빛 잘 들어오는 거실의 명당자리를 토끼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그러느라 내 사랑하는 화초들이 갈 곳을 잃었지만 말이다.

 

 

 

토끼가 앉아 있는 곳이 큰 개 전용 케이지다.

지금 우리 토끼는 이 케이지에 이층침대까지 들여 놓고 제 안방으로 사용한다.

-사진 반대편에 나무로 된 하얀 침대가 있고 이쪽으로는 여름 전용 철망침대가 있다.-

침대가 두 개.

완전 부자다.

이곳에서 우리 토끼, 위 아래를 오르락 내리락...

종횡무진 쏜살같이 뛰면서 온 집을 누비고 다닌다.

 

 

 

일부러 토끼를 위해 입 닿는 곳에 화병을 놓았다.

우리 토끼, 생풀 만찬 타임으로 생각하는지 주둥이 내밀어 잘도 뜯어 먹는다.

일부러 뜯어 먹으라고 옆에 두긴 했지만 오늘은 장미꽃이 땡기나 보다.

장미 한 송이를 물어 쭉 잡아당기더니 먹겠다며 제 집으로 옮겼다.

그리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지켜보던 내가 가까이 가 장난삼아 "너, 뭐해" 했더니

놀란 눈.

하지만 곧 그러던지 말던지...

장미는 짓밟고 다른 풀에 눈독을 들인다.

 

 

 

성공.

마음에 드는 풀잎을 찾았단다.

아주 맛있게 먹는다.

사각사각... 씹는 소리가 리드미컬하다.

 

 

 

그러더니 입안으로 자취를 쏙 감춘다.

사실 토끼는 풀을 장난삼아 먹기도 한다.

좋아하는 풀의 먹는 속도는 엄청 빠른데 이건 그리 빠르지 않다.

'나, 이거 좋아해'

말을 하면 좋을 텐데...

소리를 안 내니 조용해서 좋긴 한데

어떤 땐 강아지처럼 표정연기 못하는 토끼가 불쌍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도 오랫동안 함께 살다 보니 좋아하는 풀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몸 늘리기 운동으로 유도할 겸 토끼가 좋아하는 풀을 지붕에 놓아두면 나의 의도 대로 몸을 이렇게 쭉 늘려 먹이를 쟁취한다.

이찌나 잘 먹고 잘 놀고 건강한지 키가 무척 컸다.

'애완용이니 이제 다 컸겠지? '

토끼가 클 때마다 난 그 생각을 몇 번이나 했나 모른다.

'정말 이젠 더 이상은 안 크겠지?'

지금도 하는 이 생각.

더 커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도 난 '성장 그만'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다.^^

 

 

 

토끼는 털이 무척 촘촘하다.

그래서 목욕시키면 털이 잘 안 말라 피부병에 걸리기 쉽다.

하긴 동물이던 사람이던 최대한 자연스럽게 키우자는 지론을 갖고 있는 내가 설령 남이 토끼도 목욕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들

그말을 들을 리 없다.

토끼는 고양이처럼 제 몸을 스스로 관리한다.

글루밍 글루밍...

털을 고르고 그 털을 먹고 먹은 털을 배출하고...

본성이란다.

 

 

 

그것을 돕기 위해 건초를 먹여야 하고...

 

주식이 건초건만 우리 토끼, 쌀튀밥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동그란 튀밥을 자르느라 '톡' 소리가 나면 어디에서는 바람소리 나도록

빨리 달려온다.

고구마 말린 것도 정말 좋아한다.

가끔 달달한 과일을 주면 입이 안 보일 만큼 빠른 속도로 흡입하는 듯 먹는다.

그 녀석 눈엔 우리가 간식으로 보일지도^^

제 집에 앉아 상황을 살핀다.

 

 

 

귀를 바짝 세우고..

 

 

 

그러다 우리가 제 레이더에 걸리면 이런 자세가...

입으로 출입문을 물고 세게 흔들어 '닥닥닥' 신호를 보낸다.

이리 와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한 발을 걸치고 기다린다.

토끼가 원래 눈이 좀 어둡단다.

그러니 소리에 민감하다.

조용히 오래...

그렇게 기다리는데도 우리가 안 온다.

"이녀석아, 우리 지금 무지 바쁘거든~^^"

 

 

 

말을 못하니 포기도 빠르다.

뒤돌아 간다.

 

 

 

이층침대 있는 안방이 아닌, 화장실로 가 철퍼덕.

 

어릴 땐 이 파란 플라스틱 집이 정말 커보였다.

이곳에서 꿈틀꿈틀 두 마리가 움직이며 놀았었는데 일주일 만에 한 마리가 죽었고 남은 한마리의 토끼만 살아 남았다

그녀석이 크면서 초창기의 집이 토끼의 화장실로 전락한 것이다.

 

토끼는 화장실을 스스로 정해 한 곳에서만 오줌을 눈다.

그러니 꼭 저자리에만 똥알이 듬뿍 쌓인다.

그리고는 옆에 누워 자신의 냄새를 맡으며 쉬는 걸 좋아한다.

원래 그렇단다, 토끼는.

엄마 품에 안기면 아기가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듯 토끼도 자신의 배설물 냄새를 맡아야 편안함을 느낀단다.

 

 

 

포기한 얼굴이 오히려 평온해보인다.

이렇게 턱을 화장실 문턱에 올린 채 따뜻한 낮햇살 받아가며 끄덕끄덕 졸고 떄로는 뒷다리 달달 떨며 꿈도 꾼다.

팔자 좋은 토끼다.ㅎㅎ

그뿐 아니다.

가끔 문을 열어줘 제 집 밖에 나가 돌아다니도록 배려하면 베란다에서 안방으로 안방에서 거실로...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제 호기심이 충분히 충족될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가라며 밀면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앞발에 힘줘 안들어가려고 용을 쓴다.

참 웃기는 녀석이다.

 

이렇게 두 딸이 모두 유학가고 없는 지금 우리에게 이 토끼는 딸 대용이 아닌 이미 가족이다.

우리의 외출시간이 길어질 때면 토끼 밥 안 줘서 삐쳤겠다 걱정하고

간식거리 만든다며 고구마 삶아 칼로 작게 자르고 햇볕에 말린다 뒤적거리면서 말라가는 고구마 조각에 행복해 한다.

토끼가 쌀튀밥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나서부터는 쌀튀밥 파는 아저씨가 안 보이면 애타게 찾고

바삭한 그 튀밥을 함께 먹다가도 튀밥 많이 줄었다 생각 될 무렵이면 토끼에게 양보하느라 우린 튀밥에 손도 안 댄다.

그런 사랑을 아는걸까.

우리 토끼, 열심히 '턱질'을 한다.

우리가 만든 단어,

손가락을 쭉 펴서 들고 있으면 와서 제 턱을 힘있게 쓱 문지르는 애정행각.

별 것 아닌 듯 보이나 토끼 입장에서는 아무에게나 하는 행동이 아니다.

자신이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니까.^^

 

오늘도 토끼를 바라보며 말한다.

"털 날려도 괜찮으니 네 생명 다할 때까지 우리집에서 행복하게 살아라."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