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 하나가 늘었다.

우리 집 막내딸에게는 모든 것 다 줘도 안 아까운 동생

집 떠나 서울 사는 큰딸에게는 짝사랑

남편에게는 친구

나에게는 아들.

바로 비숑 강아지 구름이다.
갱년기에 들어선 내가 뭔가 불안하고 우울해 보였는지
어느 날 큰딸이 강아지에 대해 몇 마디 묻더니 느닷없이 하얀 털 뭉치를 데리고 전주로 내려왔다.

3개월이 되었다는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매우 큰 편인,
어쨌든 3개월이라고 우기는 강아지였다.

세상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처음 본 날 이렇게 해맑게 웃으며 꼬리 치던 아이.
집으로 데리고 온 후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집은 늘 정갈하게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다.

선반 위는 물론

바닥도 먼지 한 톨 없고

각 잡힌 물건이 서랍 안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집.
그게 내 집이었다.
그런데...ㅜㅜ

이 녀석이 온 후 다 흐트러졌지 뭔가.
참 묘한 게... 너무너무 귀여운데 살짝? 아니 꽤 많이 귀찮았다.
배변훈련 안 되어 있고
그 외 사회화 훈련은 물론 교육의 '교'자도 받아 본 적 없다.
아파트에 사는 강아지는 짖으면 안 된다가 내 지론인데 제멋대로 짖고 싸고...
난감한 일 투성인데
거기에 덤으로, 내가 쉬고 싶을 때 바로 쉴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
은퇴 후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상황이라면 적적함을 달래주는 친구라고 생각하겠으나
아직은 내 일도 해야 하고 거기에 이 아이가 아니더라도 돌봐주어야 할 딸들과 남편까지...
난 충분히 바쁘고 힘들다.
며칠 지나지 않아 가족회의를 했다.
아무리 서로 도와 기른다고는 하나 어차피 거의 모든 게 내 몫이 될 게 뻔한데
나는 못하겠으니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자고.
그런데 그 시간 이후로 마치 우리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양
쉬야도 이불에 안 하고 말썽도 줄이면서 말을 잘 듣는다.
그런저런 이유로 구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와 함께 하게 되었으니...
그게 벌써 만 일 년이 넘어 이제는 어엿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고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처음 우리집에 왔을 무렵
소파 위로 안 올라오고 늘 종아리 뒤 작은 공간에 쏙 들어가 잠을 자곤 했다.

강아지와 놀아보라고 풀어놓아도 쭈뼛쭈뼛 내 옆에 꼭 붙어 안 가
사회성 없다고 놀림 받던 아이

4개월째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수컷이지만 집에서는 오줌을 앉아서 누도록 교육시킬 예정이고
영역표시라고 하는 오줌 뿌리고 다니는 행동을 못 하게 해야 하니까.
그 외에도 3개월이 교육 적정시기라고 하니 늦지 않아 다행이다 싶어
강아지에 대한 정보수집과 공부에 나섰다.

일단 벨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
벨소리가 나면 누가 들어오는 것이니 이렇게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으로 훈련을 한다.
그 외에도
배변훈련, 앉아, 기다려, 엎드려, 하우스 등등
꼭 필요한 몇가지 훈련만 하는데도 "낑낑"
아이가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듯 보였다.
사실은 나도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냄새 지독한 항문낭은 또 뭐며
목욕은 한 번 할 때마다 왜 이리 버둥대는지 그 바람에 욕실이 아주 물난리
털이 계속 자라나는 종이기에 이곳저곳의 털을 잘라줘야 하고
알레르기가 심한 아이라 귀 염증을 수시로 신경 써서 잡아줘야 한다.
그뿐 아니다.
에효... 말 해 뭐해ㅜㅜ
어릴 적 모습부터 사진이나 보자.

수술한 부위를 빨면 안 된다며 저걸 씌우라고 했었다.
그걸 쓰고 먹고 자고..
그 모습이 얼마나 어설프고 귀엽던지^^
그 와중에 호기심은 많은지 기웃기웃.

그땐 예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못생겼다 ㅋㅋㅋ
말은 안 하지만 신기하게도 눈빛과 표정으로 모든 대화가 가능하다.
자, 지금부터 구름이의 언어^^

나 이 꽃 먹어도 돼요?

너무 높아서 안 닿는 걸요ㅜㅜ

내려줘서 고마워요.
일단 냄새부터 킁킁

먹어볼까?
눈 희번득

이것도 높아서...
패드에 쉬를 싸면 주는 간식인 건 알지만
지금 내가 오줌을 싸진 않았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데...

저것 좀 주면 안 될까요ㅜㅜ

아이 재미있어
엄마도 나랑 놀아요

제가 소파에 안 올라간다고요?
그럴 리가요.
저 이젠 안 가리고 뛰어다녀요 엄마 교육도 무시하고요ㅎㅎ

모두들 바빠 보이는데...
설마 나 혼자 두고 나갈 건 아니지요?
혹시 모르니 길목을 지켜야겠다

나가려고 씻고 있는 거 다 알아요
여기도 지켜야겠다.
그래야 나 혼자 두고 안 나가지

나도 줘요
맛있는 것 혼자 먹지 말고 쩝쩝...

여긴 내 자리.
나도 밥 여기에서 먹을래요.
--그래서 현재의 우리 구름이, 식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거^^--

엄마 나 할 말 있어요.
배가 고파요
턱 대고 얌전히 있을 테니 예쁜 나에게 뭐 좀 주세요

나도 엄마처럼 베개 베고 잘래요.
엄마 저쪽으로 좀 비켜봐요

엄마 또 첼로 하러 가요?
나 첼로 싫어
속상해ㅜㅜ

지난 5월이 구름이의 첫 생일이었다.
못 생긴 예전과 달리 많이 예뻐졌고 키고 많이 크고 몸무게도 벌써 7kg이 넘었으니
정말 많이 컸다.
지금의 구름이는,
교육의 효과로 패드 위에 배변 99.9%
집에서도 거의 짖는 일 없어 목소리 듣기 힘들고
산책을 나가도 강아지라면 당연하게 한다는 그들의 sns 격인 마킹을 전혀 하지 않는데
심지어 오줌 똥을 참고 참아 집에 와서 패드에 쌀 정도이니
이 정도면 훌륭한 성장이다.

이제는 어떻게든 이 아이를 혼자 두지 않고 데리고 다니려고 애를 쓰는 우리.

오늘도 구름이는 창문 너머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어디론가 향한다.

바로 강아지 카페.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커피 마시러 스타벅스가 아닌 강아지 카페를 찾아갈 줄...

예전에는 구름이가 나만 졸졸 따라다녔는데 이젠 내가 구름이를 따라다닌다.
"나 좀 봐줘~
안 그럼 목욕도 안 시켜주고 항문낭도 안 짜주고 털도 안 잘라주고 맛있는 닭가슴살도 안 줄 거야"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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